매거진 장cine 수다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눈을 파이고 얻은 사랑

by 장혜령

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는 이와이 슌지의 조감독이었던 나가타 코토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청춘의 어두운 그림자를 좇는 누아르풍을 따르면서도 의리 이상의 감정 변화를 품는 기교가 드라마틱하다. 실제 20대 초반의 지인이 겪을 일을 계기로 젊은 층의 범죄 연루와 재기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힌 감독은 이야기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니시오 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영화 <한 남자>의 무카이 코스케가 각색에 참여했다. 지난 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배우가 ‘부산 어워드 배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0년대 이후 일본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토요코 키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버블경제의 붕괴로 가정 내 경제적 체계도 함께 무너진 부모 세대의 빈곤함이 만든 결과다. 부모의 가난은 자녀에게 전가되어 양극화를 만들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은 개선되지 않고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다. 30여 년간 악순환이 반복되자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의지조차 사라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정, 집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유약한 청소년은 집 밖으로 나왔다. 토요코 키즈는 대략 가부키초의 극장 주변 골목인 토요코에서 활동하는 무리를 일컫는데 한국의 가출팸과 비슷하다. 화려한 도시, 깨끗한 일본의 어두운 속내다. 가정과 학교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은 쉽게 범죄에 빠진다. SNS를 통해 서로를 찾고 공동체를 만들며 지속적이기보다 파편화된 양상으로 불안정한 관계를 형성한다. 일본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인솔하고 보호하지 못한 채 사회문제로 키웠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회-가정-개인으로 번지는 악순환

common (8).jpeg

동생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카지타니(아야노 고)를 통해 호적을 판 타쿠야(키타무라 타쿠미)는 MZ범죄 조직에 발 들이게 된다. 조직에 익숙해진 타쿠야는 신참내기 마모루(하야시 유타)를 친동생처럼 아끼며 유대 관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마모루는 가정폭력을 당하다 끝내 집을 나왔다. 하루 끼니를 때우고 잠잘 곳만 있으면 된다고 믿지만 극한 외로움에 사무치는 소년이다. 우연히 MZ 조직에 스며들어가게 되어 친형 같은 타쿠야를 따르게 되지만, 의심을 놓지 않는 경계심을 보인다.


한편,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던 타쿠야는 이번에는 반대로 마모루의 호적까지 구매하려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범죄에 얽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세 청년의 3일 동안의 도주극을 전형적인 누아르의 틀을 벗어난 유사가족의 형태로 구성함으로써 따스함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한다. 제목처럼 과연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지 인물 각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따뜻한 누와르의 정서

common (9).jpeg

영화는 경제적 빈곤에서 시작된 반향이 정서적 빈곤으로 퍼져가는 잠식을 묻고 있다. 마모루-타쿠야-카지타니의 삶을 다루는 3막 형식을 빌려 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폭력, 살인, 장기밀매 등 조직의 은밀한 사건에 연루된 무서운 조직 안에서도 서로를 돌봐주는 애틋한 관계성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세 사람은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피해자들을 신경 쓰고 서로를 걱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을 가장해 남성에게 접근하고 호적을 매매를 하면서도 연민이 생겨 갈등한다. 피해자의 사연을 듣고 마음이 동요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타쿠야가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마모루와 조직을 벗어나 새 출발을 꿈꾸는 미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범죄로 시작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가장 어린 세대 마모루까지 충분히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지타니는 타쿠미를 조직에 소개했던 인물이었지만 오히려 탈퇴에 적극 앞장서는 인물로 변모하며 미숙한 어른의 성장까지 보여준다.


진흙탕에서도 꽃이 핀다

common (10).jpeg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낭비해 버리는 무가치함이 진창에서도 꽃이 피는 생명력으로 승화된다. 일본 사회문제를 대담하게 짚으면서도 볼거리 가득한 비주얼, 서스펜스와 스릴의 장르적 재미, 혼신의 연기가 돋보인다. 로맨스 스캠, 호적 암거래 등 다양한 범죄 양상을 비추는 범죄극이지만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어조로 새 인생을 시작할 두 번째 기회를 넌지시 건넨다.


결말부에는 눈, 꼼데가르송 셔츠, 전갱이 조림으로 상징되는 복선마저도 완벽히 풀린다. 그중 집밥은 가족 구성원의 영양분이자 생존의 의지로 읽힌다. 세 인물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전갱이 조림을 먹는 장면은 운명으로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타쿠야가 능숙한 솜씨로 마모루에게 집밥을 해주는 따스함과 그가 눈을 잃고 나서 카지타니의 손을 빌려 요리해 먹는 전갱이 조림으로 교차된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그로 인해 용기를 얻어 살아갈 여운이 짙게 깔린다.


세 인물의 서사는 곧 한 명의 인생처럼 동일시되고 관객은 각자의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카지타니로부터 시작된 어두운 길은 타쿠야의 작은 등불로 밝혔고 마모루가 이어받는 형태다. 점차 각박해져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함께한다면 조금은 살만하다는 힘찬 메시지로 들리는 이유다. 십 대 싱어송라이터 tuki.(츠키)가 들려주는 ‘인생찬가’ OST의 가사를 곱씹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하는 가사도 인상적이다. 영화가 끝나도 극장을 빠져나갈 수 없는 짙은 여운으로 기억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슈퍼 해피 포에버> 5년 전 잃어버린 모자 찾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