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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pr 08. 2019

<한강에게> 시를 닮은 영화.

천천히, 오롯이, 꾸준히 오늘을 견딘다

© 한강에게, To My River, 2018, 박근영


시인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진아는 10년을 만난 연인 길우의 뜻밖의 사고로 몹시 힘듭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늘 그렇듯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진아는 차분히 기억을 따라가며 추억을 지워갑니다. 함께한 자전거를 팔고 친구도 만나며 똑같은 일상을 꾸려나가 봅니다. 하지만 문득 예전 같지 않은 관계가 주변을 어지럽게 합니다.


오랜 연인의 사고로 혼란스러운 일상, 죄책감때문에  병문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길우의 상태. 진아는 사고 현장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사고를 당하기 전 크게 싸웠기 때문에 자기 때문인 것 만 같죠.



진아는 길우의 빈자리를 묵묵히 견딘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 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되잖아.



<한강에게>는 박근영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되었습니다. 스태프 없이 배우들과 감독 한 명만 존재하는 미니멀 시네마 촬영을 택했고, 연출, 각본,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녹음 그리고  시 「한강에게」까지 쓴 무서운 신예입니다.




오랫동안 시집을 준비했던 진아는 길우일로 동요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지만 쉽지 많은 않습니다. 참 그렇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글 쓴다는 일은 어렵고도 험난한 과정입니다. 시를 쓰기로 했고, 시집이 나와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영화 <한강에게>는 상실을 겪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오롯이 꾸준히 카메라가 진아의 일상을 담담하게 답습니다.


영화는 가만가만 진아를 좇다 이내 극적인 순간들을 쏟아냈고,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배우의 몰임감을 100% 따라가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빨래방에서의 무지개라든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쳐 멋진 순간을 연출할 때처럼 자연스럽고도 인위적인 연출을 보여줍니다.



영화 <한강에게>



누구나 한강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기쁨, 슬픔, 분노, 좌절 등 한강은 언제나 거기에서 흘러흘러  온전한 품을 내어줍니다. 일렁이는 물결은 마구 흔들리는 내 마음 같았고, 얼어붙은 강은 지금 내 기분 같았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상처도 흘려흘러 아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상처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에 한 발짝 다가간 겁니다.  괜찮다고 애써 말해야지 괜찮아지는 거짓말보다 솔직한 인정이 때론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시집 《한강에게》가 나온다상처를 극복하고 내놓은 첫 시집이다


영화는 상처를 겪는 사람이 서서히 극복하는 과정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죄책감과 미안함,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 모여 한 권의 시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시(詩)와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 긴 여운을 즐기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덧, 영화 속 영화감독 부부의 15분 롱테이크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과 <범죄의 여왕> 이용섭 감독입니다. 후반부 책방에서 낭독하는 부분은 퇴근길 책한잔이고, 박시아 안희연 시인의 특별출연이 있었습니다.





평점: ★★★☆

한 줄 평: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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