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장cine 수다

<프랑스 여자> 경계인, 여성, 중년 그리고 개인

by 장혜령


<프랑스 여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디아스포라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영화는 <열세살, 수아>, <설행_눈길을 걷다>의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한국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는 중년 여성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다뤘다.


카메라 전환이나 흑백 처리 같은 인위적인 연출이 아닌, 여성의 20대와 40대의 간극을 이질감 없는 독특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찬란한 20대를 함께한 친구들을 2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몽환적인 장면은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굴곡진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흔들리는 중년, 여성, 경계인

영화 <프랑스 여자> 스틸컷

청년기보다 흔들리는 정체성으로 고통스러운 미라(김호정). 예술인을 꿈꿨으나 좌절된 꿈, 사랑을 믿었지만 배신당한 믿음이 불안을 이끌어냈을까. 최근 프랑스에서 10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남편은 자신의 후배였던 한국 여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마치 자신과의 사랑도 대체품은 아니었을지 깊게 부정하기에 이른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미라는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단골 술집에서 재회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예기치 못한 일을 겪는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1997년 자신의 송별회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암묵적으로 쉬쉬하던 혜란(류아벨)을 다시 소환하며 아득한 기억 속 그날을 떠올린다. 20대의 모습을 한 친구들과 40대의 모습을 한 미라를 위화감 없이 대화한다. 미라는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미라의 심리를 투영한 장면은 액자식 구성, 연극을 보는 듯 자연스럽게 낯선 장면을 그려냈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린 <줄 앤 짐>. 두 하녀가 마담과 딸을 살해하는 부조리극 <하녀들>, 엠마와 제리의 5년간의 불륜과 남편 로버트와의 관계로 풀어 낸 <배신> 들 영화와 연극은 <프랑스 여자>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불분명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

영화 <프랑스 여자> 스틸컷


영화는 미라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세심히 포착한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연극의 장면이 뒤섞인 장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왜곡된 기억의 조각이다. 같은 장소 시간에 있었는데 만나지 못한 것처럼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은 제거되고 핵심만 남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기억의 한계를 정면돌파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잊지 않으려고 기억하고 자꾸만 내 뱉으며 거론하고 꿈으로 회자되는 일들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미라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찾은 곳은 광화문의 세월호 텐트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직접 지키려는 의지로도 보였는데, 무언가에 이끌리듯 머물렀다. 그리고 미라는 덕수궁 미술관으로 바뀐 공연예술아카데미 건물을 찾아 그날의 기억을 꺼낸다.


20년 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을 몰랐던 미라는 20년 후 남편의 외도를 통해 부메랑처럼 되받는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남편의 말에 분노하지만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살한 혜란이 느꼈을 감정을 곱씹어 본다. 이렇게 아프고 분했던 마음을 혜란은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독 섬세한 감정이 돋보이는 은유가 자주 등장한다. 분위기 메이커인 영은(김지영)은 마음을 좀처럼 알 수 없다며 감정을 숨기는 미라를 질타한다. 하지만 미라는 왜 모든 감정을 다 나누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말한다.


서로 다른 견해처럼 속마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로 나눈다고 해서 진심이 아닐 수 있다. 영화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논한다.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사회성과 개인성의 독립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과 경계인의 외로움을 제3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영화 <프랑스 여자> 스틸컷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오는 미라의 본능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에도 중심을 잡아 준다. 미라의 고통은 한국과 프랑스, 20년 전과 후, 세월호와 파리 테러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원 테이크 방식으로 우리는 한 개인의 역사를 들추는 일이 하찮은 것이 아님을 목적지에 다다라서 알 수 있다. 과연 미라가 한국에 왔었는지, 오고 싶은 열망인지 뚜렷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오랫동안 장악할 것이다.




평점: ★★★★★

한 줄 평: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결국 기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플랫폼> 존엄성과 본능 사이의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