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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22. 2020

<운디네>배신으로 맺어진 낭만적 사랑,아름답고 신비롭다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성의 이름은 요하네스 (제이콥 맛쉔츠). 지금 막 이별을 통보하는 중이다. 여성의 이름은 운디네 (파울라 베어). 눈물을 보이며 나를 떠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요하네스는 시간 끌기 하는 운디네가 못마땅하다. 빨리 가봐야 한다고 자리를 뜨려는 찰나, 운디네는 30분만 기다리라며 바로 옆 직장으로 향한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내내 기다리고 있는지 창문으로 확인하며 연신 불안에 떠는 운디네. 평범한 이별 같지 않다. 대체 무슨 사연을 가진 걸까.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운디네는 관광객들 향해 베를린의 역사 강의를 하고 다시 카페로 향하지만, 어디에도 요하네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실망한 것도 잠시, 운디네는 카페 안쪽의 수족관 속 잠수부 조각상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운디네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강의를 듣고 따라온 산업 잠수사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가 말을 걸어오고,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운디네는 강한 이끌림으로 그와 연인이 된다. 한 번도 사랑에 빠져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또다시 사랑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둘은 도시와 교외의 멀고 긴 물리적 거리를 오고가며 사랑을 쌓아 간다.     

영화 <운디네> 스틸

크리스티안 펫촐트 감독은 전작 <트랜짓>에 이어 또 다시 사랑이야기로 향했다.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던 운디네 설화를 베를린 도시 개발을 강의하는 현대적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운디네(Undine)'는 유럽의 강이나 샘에 사는 물의 정령이다. 물결을 의미하는 라틴어 'unda'에서 기원했으며,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인간과 사랑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영혼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성이 배신하면 영원히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남성이 운디네를 잊고 다른 여성과 결혼해서도 안된다. 운디네는 반드시 다시 찾아와 남성의 목숨을 빼앗아 오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린 운디네 설화는 구전 문학답게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기 여러 문학 및 예술을 통해 다양한 변주를 거듭해 왔다. 대표적으로 안데르센 《인어공주》, 푸케의 《운디네》가 있다. 그중에서도 감독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운디네가 간다》를 각색해 여성의 시각으로 조명했다. 남성들이 만들어 낸 일방적인 전설을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성이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스스로 개척하려는 능동적인 주인공으로 탈바꿈, 현대 여성의 공감력을 높였다.     


그녀는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해서 앙갚음을 하기도 싫고, 숲의 호수로 돌아가기도 싫다. 박제된 동화 속 비련의 주인공을 버리고 독립된 개체가 되고 싶다. 오로지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이 전부인 여성으로 말이다.    

영화 <운디네> 스틸

그래서일까. 마치 운디네와 한 몸 같은 도시 베를린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베를린은 습지 위에 지어진 도시이다. 물을 빼내고 흙을 덮어 도시를 만들었다. 일종의 계획 도시인 셈. 1990년대 통일을 통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본격적으로 아픈 역사를 지워나갔다. 근대와 현대, 동독과 서독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베를린은 신비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도시의 전설은 증발해버린 물처럼 떠나간 듯 보이지만, 아직 깊은 진흙 속에 남아 운디네를 되살려내는데 일조한다.     


영화 <운디네>는 <트랜짓>에 이어 '물'과 '사랑'을 주제로 폴라 베어, 프란츠 로고스키의 환상적인 조합을 만들어 냈다. 베를린의 디오라마를 토대로 강의하는 파울라 베어는 운디네 그 자체다. 이 영화로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고혹적인 특유의 매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눈물을 보이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단호함, 슬픔이 서려 있지만 매섭게 쏘아보는 단 한 번의 눈길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물의 정령의 아련한 모습이다. 그리고 몸으로 대사를 읊는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는 잃어버린 조각을 찾은 사람처럼 운디네를 향한 사람을 숨기지 않는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환상동화 같은 이야기에 은은한 생명력을 선사한다.


평점: ★★★★☆

한 줄 평: 내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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