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난 길에서 '혼자'라는 사치

by 두니

가끔은 이렇게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 ‘그냥’이라는

시간의 호사 속으로

말없이 걸어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네가 있는 세상을 쏙 빼버린,

'그냥'이라는 시간 속으로.

미친 듯이,


그렇게 걷고 싶어 택한 길이

올레 10-1코스,

가파도의 바람 난 길이었다.

그리고 다시 10코스의 길 위에

생각을 접고 마음을 묻으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냥'의 그 길은 자연스레

11코스 모슬봉을 향해 이어졌다.


평범한 길가의 돌멩이,

늘 낯설기만 한 바람,

어쩌다 스치듯 마주친 사람들.

그들은 늦은 시간 여자가 혼자 오르기에

모슬봉은 위험하다며 가지 말란다.


하지만 눈앞의 모슬봉은

나지막한 오름일 뿐,

길도 훤히 열린 듯 보였다.


‘이쯤이야….’

그렇게 나는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괜찮은데?’
그렇게 오르기 시작한 길은
공동묘지와 숲을 가로 지르는 좁은 길로 향했다.
또 다른 숲, 또 다른 묘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땅거미 내려앉은 으슥한 묘지 옆길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걸음은 저절로 빨라졌고

급기야 뛰듯 오르기 시작했다.

걷는 것인지, 도망치는 것인지.

그렇게 숨 가쁘게 오르던 중

앞서가는 노란 옷의 길 객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의 안도.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허락도 없이 보폭을 맞췄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상에 올라

고마움을 전하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제가.... 뒤에서 따라가도 될까요?"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거절을 말하고 있었다.

'다리를 다쳐 잘 걷지 못해서...'

말끝을 흐리는 그의 말속에서

거절의 의사가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멀찍이 걷겠다 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내 존재가 이미 그의 고요를 흔든다는 듯

더 흔들렸다.

아니, 어쩌면 더 불편해진 쪽은

나였는지도 몰랐다.


좁은 숲길을 벗어나자 두려움은 사라졌고,

다시 길을 느낄수 있게 되어서야

뒤늦게 그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혼자 걷는 길이었으니

그 역시 혼자이고 싶었을 것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

나는 어쩌면, 그에게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지 모른다.


혼자가 되고 싶어 길을 나선 나였지만

순간의 두려움에

그의 고요를 헤아리지 못했다.


나도 가끔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가 지금, 그런가 보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을 안고

큰길부터는 홀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11코스를

끝내 완주하지 못했지만,
정난주 묘역을 지나

신평리 버스정류장에 이르러
지친 시간과 미친 걸음을 멈춘 거기.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나는 '혼자'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또 다른 나와 마주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