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 인간을 지키는 가장 인간적인 시간 -

by 두니

'Space out'

'Zone out'


비워야 채워진단다.
멍하니 있는 그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 순간에
오히려

인간의 창의력이

가장 활발히 작동한다고 한다.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다.


알파고와 커제의 대국을 지켜보던 날.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한 채
묵묵히 무너지고 있던 커제의 모습.


그 안에서 나는

묘한 안타까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저게, 우리의 미래는 아닐까.'


창의력만큼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우리에게
알파고가 보여준 그 수는,

과히 충격 그 자체였다.


예측 불가능한 수,
계산을 넘어선 직관 같은 그것.
우리가 ‘감각’이라 불러온

무형의 영역까지
기계가 침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멍 때리기를 떠올렸다.

멍 때리는 시간.


보기엔 무의미한 그 ‘비움’ 속에서
느낌이 피어나고,
생각이 자라며,
어쩌면

기계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의 여백’이 생겨난다.


속도와 정밀함에서

기계는 이미 인간을 이겼다.


그러나

멈춤과 무의미—

혼돈과 여백—
이 모든 비효율의 틈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회복한다.


비우는 만큼 채워지는

새로운 주말.
그 빈자리에서 피어날 무언가가
다시 인간인 나를 존엄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멍 때리기로
기계를 이겨보기로 했다.


'Space out.'

'Zone out.'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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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