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by 두니

"뚜르르르."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내가 먼저 전화했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엔

핀잔 섞인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정말이지—할 말이 없었다.


그와 만난 건 정확히 일주일 전,

생일을 핑계로 밥 한 끼를 사겠다며

저녁 초대를 해왔고

나는 별 기대 없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기억나는 건,

한껏 멋을 낸 그의 모습,

식당의 조명이 은근히 괜찮았다는 정도.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최 선생."

그의 다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을 땐,

나는 식사를 거의 끝낼 무렵이었다.


내 접시에는

야채 몇 조각만 조금 남아 있었고

그는 음식엔 손도 대지 않은 채

포도주만 몇 잔 들이켰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기 집안 이야기,

소유한 것들,

회사 일.

앞으로 짓고 싶은 집,

노년의 계획…


모두,

그 자신에 한 이야기였다.

그러곤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뭘?'

'도대체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지?’

속으로 되뇌고,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왜 제게 묻는 거죠?”


내 대답은 가벼웠고 어색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이 잠깐 커졌다가

이내 잔을 또 들이켰다.

그의 입매는 일그러졌고

손끝이 떨렸다.


잠시 말이 멈췄고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땐,

이미 테이블 위의 공기는

묵직해져 있었다.


“…내가,

지금 힘들게 말하고 있는 건데…”


머뭇거리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거—프러포즈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청혼을 하고 있는 거였구나.

“지금…

저에게 프러포즈하고 계신 건가요?”


그는 진지했고,

나는 가벼웠고 어려웠다.

무엇보다 설레지 않았다.


체면도 자존심도 내려놓고

말을 꺼냈다는 그에게

나는

'너무 갑작스럽다'라고,

'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라고

정중히 대답을 피해야 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핑계는

그를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


어색해진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니, 그 자리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의 얼굴도, 말들도,
마치 한 편의 광고처럼

내 안에서 지워졌다.

그저, 흔한 저녁 식사였을 뿐.


오늘 아침,

그의 전화가

다시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미안해요.

사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당신과의 저녁을 잊어버렸네요.

만남에 뒤가 없었고,
여운이 남지 않았다는 건—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어떤 설렘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래서…안 되겠네요.”


그 말을 꺼내는 내내
마음은 조심스러웠고,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다.
그를 배려하고 싶었고,
진심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아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프러포즈에는
설렘이 없었다.


“아니, 그 나이에—

아직도 설레는 사랑을 꿈꿔요?”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고,

속상함이 묻어 있었다.


“예, 그럼요.”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는지,

내 대답이 먼저였는지.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의 대화도,
그와의 인연도,
그 한마디로 끝이 났다는 것.


그리고 내게,
사랑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설레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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