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의 결실일까?
백설공주, 신데렐라...
우리가 잘 아는 동화들 속에서
평범한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른다는 것은
모든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처럼 보였다.
거의 모든 이야기에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자 완성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의 시각은
우리의 소소한 내면을 건드린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고.
그에 따르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첫걸음도 떼지 못한 것이란다.
결혼이야말로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가슴 설레는 결혼 이후
난관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찾아온다.
돈 걱정,
아이의 울음,
익숙함 속 권태,
그리고
상처와 실망이 켜켜이 쌓인 어느 날…
가끔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조차
든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러브스토리라고.
.......
나의 러브스토리도 그랬다.
바라만 봐도 좋고
숨소리만으로도 설레던 그.
냄비 하나에 수저 두 개,
단칸방에 부엌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함께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눈
달콤함 뒤에 오는 나른함.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이런 현실감조차
내겐 달콤함이었다.
늘 시작만 있을 것 같았던
나의 러브스토리는
내 마음속의 그를 죽이기에 앞서
먼저
나를 죽이는 것으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수십 년....
···
'엄마, 남자 친구 없어?'
가끔씩 걸려오는 안부 전화
태평양을 건너온 자식의 목소리는
보채는 듯,
안쓰러운 듯,
나이 든 에미에 대한 염려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시리다.
벌써
자식에게 짐이 된 걸까,
하는 서운함이
불쑥 치밀어오른다.
그리고
나는 내게 묻는다.
내가 다시
빛나는 러브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을까?
.....
그리고,
바래본다.
다시 찾아 올
나의 끝 사랑은—
빛바랜 듯 소소한, 주름진 미소 같은 것.
느리고,
무른 듯 처진 내 피부만큼
잔잔하고,
따뜻한 러브스토리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