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 속으로 다시 온 너에게
한 해가 끝날 무렵이면
나는 나에게 작은 선물을 한다.
이 녀석, 로봇 청소기가
내게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2012년,
‘나의 작은 행복’이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이 녀석은 내 집으로 들어왔다.
첫 만남이 주는 설렘과 경이로움.
집 안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이는 모습은
마치 작은 생명체 같았다.
한동안 녀석은 우리 집 살림의 중심이었다.
대견했고
신기했고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은 조금씩
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턱에 걸려 삐빅 거리고
먼지 통이 차도 삐빅 거리고
브러시에 머리카락이 엉켜도 삐빅거렸다.
그때마다 분해해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먼지 통을 비우고
구석구석 닦아 주어야 했다.
점점 더 성가시게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 되어 갔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녀석의 몸에는
나잇살 같은 흠들이 늘어갔다.
고장 난 부품을 구하기도 어려워졌고
성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
이 녀석은 이미 은퇴하여
언젠가 버려야 할 물건으로
창고 구석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어쩌다 눈에 때면
‘이거 버려야 하는데....’
잠깐의 마주침으로도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TV 홈쇼핑에서는
신형 AI 로봇청소기가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더 똑똑하고
더 세련되고
더 매력적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퇴 후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 했을 때,
나는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며
다시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때
초라하게 버려지기만 기다리고 있던
이 녀석을 다시 만났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브러시에는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다.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문득 울컥한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왔다.
‘너도… 나이 드니,
결국 버려질 날만 기다리는 거니?’
나는 옛 친구를 꺼내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먼지와 엉킨 머리카락은
버려도 좋을 충분한 핑곗거리였지만
버리더라도 최선을 다 한 녀석을
깨끗하게 닦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를 털어주고
브러시를 분해해 엉킨 머리카락을 떼어주었다.
부러진 부품도 갈아 끼웠다.
열심히 일했던 녀석에게
늦은 선물을 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너… 그냥 한번 해볼래?”
스위치를 눌렀다.
윙────
녀석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을 더듬고
가구 사이를 지나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녀석은 여전히 성실했다.
그렇게 14년 만에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온
이 옛 친구는
매일 집 안을 한 바퀴 돈다.
녀석과 나는
은퇴 후의 빈 시간 속에
새로운 루틴을 만들었고
집 안 구석구석을 리셋하며
우리의 삶에 다시 역할을 부여했다.
물론, 녀석에게도 일을 주었다.
‘집 안 한 바퀴.’
이 녀석의 아침 루틴이다.
오늘 아침도
우리의 루틴은 그대로 지켜졌다.
녀석이 집을 도는 동안
나는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가끔씩 고개를 돌려
내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온 녀석을 바라본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녀석.
“너, 지금 어디 있어?”
소리를 따라간 곳은
내 손이 잘 닿지 않는 소파 밑이었고
녀석은 어두침침하고 손이 잘 닿지 않는
소파 밑을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녀석을 향해 던진 한마디
“아이고, 예뻐라.”
오늘 아침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는지
녀석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나는 웃었다.
아주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웃음이었다.
버려질 뻔했던 옛 친구 하나가
다시 내 삶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서로의 아침을 함께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