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우린 서로에 대한 배려의 화신이 된다.
<나는 솔로>는 여전히 재밌다. 솔로들의 언어와 몸짓에서 예전의 감정을 되살린다. 늘 반전이 하나쯤은 기다리고 있고, 안타까운 결말도 남녀 간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엔 고개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어 있다. 왜 최종선택을 안했는지, 왜 최종 커플이 되지 못했는지. 적어도 8기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솔로 9기'는 일찍이 예고편에서 소위 '대박'이라고 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지 못한 채, 기대감만 잔뜩 가지고 2회차 자기소개 시간에 이어 첫 데이트 선택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제 모두 아는 공식처럼 막장드라마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은 충분히 확보한다. '옥순'과 '광수'가 그랬다. 공교롭게도 6기 '옥순'과 '광수'를 다뤘던 리뷰와는 다른 분위기다. 그때는 아련했고, 안타깝고 그랬다. 그러나 이번 9기의 '옥순'과 '광수'는 너무나 선명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패착이었다.
첫 데이트 선택에서 '옥순'과 '광수'는 각각 다른 짝을 만났다. '옥순'은 선택을 했고, '광수'는 선택을 받았다. 그렇게 각자의 짝과 데이트를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여러분은 정직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진행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광수가 '나는 알지~'를 앞서가는 옥순을 향해 나지막이 뇌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순이 화답하듯 '맥모닝'과 '서브웨이' 드립을 쳤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광수의 발언도 옥순의 발언도 모두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골린 것이지만, 본질은 본인의 첫 데이트 상대와 서로의 데이트 파트너까지 철저하게 무시한 언행이었다. 그들의 '티키타카'로 인해 데이트 파트너들은 순간 의도치않게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파트너, 나아가 상대방(옥순, 광수)의 파트너까지 배려했다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옥순과 광수는 실제 30대 중반을 넘어섰고, 자신의 위치에서 기반을 어느정도 잡은 사람들이다.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유치할 수 없는 그들은 왜 그토록 민망할 정도로 치기어린 언행을 나눴을까.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솔로나라에서 자신의 배역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에서 출연진들은 가명을 쓴다. 가명은 곧 익명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언행이 과감해지는 효과를 불러온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이성을 만나 단 하루만에 사랑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을까. 더구나 그곳은 하루종일 단둘이 붙어 있는곳이 아니고, 같은 처지의 동지들과 수백대의 카메라와 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제작진이 도처에 있는 곳이다. 익명으로 점철된 배역이 아니고 출연진의 본명으로 나섰다면 그들은 좀 더 천천히, 보다 느리게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다. 1기부터 9기까지의 솔로들이 밤늦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본인도 본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이 가끔 나온다. 실제 본인의 연애 스타일은 그렇지 않은데 처음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혼란을 마주한 것이다. 결국 솔로나라의 상황과 익명이라는 배역이 그렇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옥순과 광수는 많이 유치했다. 서로에게 골났고, 질투했고, 주위를 배려하지 않았다. 연거푸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건 일부러 데이트 파트너를 엿먹이겠다는 의도도 아니었고, 그 순간 오롯이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했을 뿐이다. 그래, 인정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기 불편했지만, 그게 그들의 감정선에서 보면 자연스러운거였다. 놀라웠다. 백번 수긍한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가는 몰이해 속에서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아직 겨우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