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김부장'은 나보다 낫다.
그냥 지금 문득 생각나는 것만 말해보면, 혹시 꼰대력(?)은 비슷할지 몰라도,
집도 인서울 자가이고, 통신분야 대기업 명함에, 아들도 SKY 재학중이 아니던가.
거기에 퇴직금과 위로금 명목을 합하여 3억여원을 받지 않았는가.
(퇴사 후 곧바로 레버리지를 통한 무리한 상가 투자는 픽션이므로 이해가 안되더라도 넘어가자.)
이제는 서울에 자가를 가진 사람을 대기업에 출퇴근 하는 것보다 우위로 보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제목부터 그렇게 뽑은 것을 보면, 서울에 있는 내 집이 가장 내세울만한 자랑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경기도 모처에 자리잡은 내가 과연 서울로 입성할 수 있을까. 연이은 부동산 대책으로 사람들이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표현을 하던데 그런 내가 언제쯤이면 서울 안에 집을 사서 이사갈 수 있을까. 왜 꼭 서울로 가려고 하냐고? 간단하다. 직장이 서울에 있으니까.ㅎ 직주근접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상적인 단어인가. 결혼하기 전엔 직주근접을 몸소 느꼈던 나로서는 그 정도의 행복한 일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출퇴근 시간이 30분 내외였다가 갑자기 2번의 환승을 거쳐 1시간반으로 늘어나니, 시간은 3배가 되었지만 피로도는 5배가 되는듯 하고, 삶의 질은 10배 떨어진 느낌이다. 6시 칼퇴근하여 배차시간이 환상적으로 맞는다 하여도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40분이다. 옷 갈아입고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금방 9시가 된다. 그럼 아이는 곧 꿈나라로 간다. 워라밸은 무너진지 오래고, 일요일 밤이 되면 군대 휴가 복귀자의 심정을 비스무레하게 다시 느끼곤 한다. 그래도 한동안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매주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중간 환승 정류장에 내려 포장해가는 가마치 후라이드 통닭 1마리를 셋이서 둘러앉아 오픈할 때였다. 살이 통통하진 않지만, 만원도 되지않는 돈으로 세 명 모두 적당히 먹을 수 있어서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금액이지만, 거기에 나는 맥주 한 캔 곁들여주면 그보다 행복한 금요일 피날레는 없었다. 아이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현관 앞에 서 있다가 아빠보다 통닭에 눈길을 먼저 주지만 그 2시간 가까이 기다림의 소중함을 알기에 매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느덧 가을이 겨울 옷을 꺼내 입고 있는 요즘, 출근하기 위해 나서는 6시 반은 어슴푸레하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그 길이 유난히 쓸쓸하다.
직장인은 직장이 간판이다. 친구들과의 서열도 출신대학보다는 어느 기업에 다니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기업일수록 연봉이 높을 확률의 상관관계가 아직은 보편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김부장'이 다니는 기업은 예로부터 선망의 직장이 아니던가. 급여면 급여, 복지면 복지, 대우면 대우,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회사에 다니는 부장이면 주변인들의 시선은 차치하고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임원을 꿈꾸는 주인공이 25년차에 부장이면 50대 초중반일텐데, 40대 중반에 아직도 과장인, 차장을 꿈꾸는 나는 퇴사하기 전에 부장을 달 수나 있을까.
더구나 위로금도 없지만 예상 퇴직금은 1억도 안될텐데, 통닭집이라도 차릴 수 있을까.
어느덧 MZ세대들이 입사하여 라떼는 상상도 못할 사고방식과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하나같이 다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중에 내 사장님이 될 수도 있는 그 친구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이 유난히 쓸쓸하다.
40이 넘고 50을 바라보니, 이제는 내 자랑이 아니라 자식 자랑으로 사는 세대가 된 느낌이다. 자식들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단 '김부장'은 기어이 명문대생을 길러냈으니 지금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성공한 인생인가. 본인이 임원이 되는것과 자녀가 명문대를 입학하는 것 중 양자택일 하라고 하면, 부모 대부분이 후자를 고르지 않을까. (물론 임원이 되어 스톡옵션을 받는 대기업 회사원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려고 초등학생부터, 아니 유치원때부터 학원을 위한 학원, 십수년간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내시키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설계된 명문대 간판은 과연 자녀의 행복일까, 부모의 행복일까. 부모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녀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나와 와이프의 교육관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교육에 있어 오버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고통받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되,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다들 해봐서 알겠지만 공부는 강요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스스로 해야 하는 거니까.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평일 내내 학원을 간다는 것이 지금도 나로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녁 7시 전에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러나 여전히 집에서 놀지 못하고 학원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하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졸업한 '김부장'이 부럽다. 그렇다고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김부장'이 되어 있고 싶지는 않다. 왜냐고? 난 아직 '김부장'보다 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