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때 택배 배달원을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떠난 중국을 시작으로 틈틈이 10개국 이상 다니면서,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편하고 목적에 맞게 패키지 여행을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여행을 동경한다. 시간적 여유와 시각의 자유, 이것이 한데 어우러져 낭만의 신기루를 형성한다. 젊은이들은 패기가 더해져 더더욱 그렇다.
나 역시 20대때는 무조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다녀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더라.
시간적 여유..
터키 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까지 그리고 파묵깔레로 가는 패키지 버스 안, 10시간이 넘는 여정에서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가이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지나가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던것 같다. 이따금 글도 쓰고 말이다.
요르단에서 나만의 루트를 나만의 차로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달리는 것은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러나 길은 생각보다 험준하여 늘 긴장했고, 지도는 글노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었으며, 하루가 저무는 것은 내 고요한 감상을 내내 재촉하는 것이었다.
시각의 자유..
내 여행에서 시각은 시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은 양의 차이일뿐, 실제 중요한것은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을 느끼는가였다.
패키지여행이라서 올드해보이거나 아마추어적인게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여행이라서 폼나고 부러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결국 여행은 자유와 패키지의 갈림길은 아니었고, 여행 그 자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말이다.
사랑 또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가 중요한건 아니다. 가난한 사랑, 화려한 사랑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속에서 꿋꿋이 사랑을 한다고 해서 미화되거나, 호화로운 데이트에 럭셔리 이벤트로 점철되는 사랑이라고 해서 비난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랑하면 사랑하는 걸로 되는거다.
가난한 커플에게 떡볶이는 운명이고,
화려한 커플에게 떡볶이는 운치라도,
어쨌든 그들이 입에 넣는 건 똑같이 떡볶이다.
사랑은 여행처럼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가 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반대의 것들을 동경하고 부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그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우열과 등급의 갈림길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