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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마치 틀린 가사가 아이의 순수한 시절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by 둥리지

아이의 세계는 줄곧 현실과 상상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어떤 날은 이천 년 전 공룡과 함께 살던 때를 이야기했고, 또 어떤 날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듣고 봤던 것들을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던 아이. 그런 아이 앞에서 웃음을 참아 가며, 때로는 솟아나는 물음표를 눌러 가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 주어야 했다.


그랬던 아이의 입에서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던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 머릿속에 불현듯 재생된 장면 하나. 현관에서 아빠의 큰 구두 속에 제 작은 발을 집어넣고는 뒤뚱거리던, 두 돌쯤 된 아이가 번뜩 떠올랐다. 짧고 통통한 다리에 바지도 걸치지 않은 채 기저귀만 차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어느 여름 날 쯤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의 짤따란 몸뚱이와 말랑하고 여린 속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던 제 아빠의 구두처럼, 여전히 두 볼과 발등이 통통한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맞서 싸운 관창'이라니. 작고 동그란 입술로 ‘금수강산’과 ‘홍익인간’을 빚어내는 모습은 기특하다 못해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바쁘다. 위인들의 이름을 그러모아 더듬더듬 노래를 이어가는 아이는, 제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요상한 표정을 알아챌 겨를이 없다. 다만 아이는 묻고 또 묻는다. 위인들의 정확한 이름을, 한 나라가 망하는 이유를, 왕이 바뀐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기어이 발음은 했다만 도통 이해되지 않는 사실들을 이해하고 싶어 제 아빠를 괴롭힌다. 일곱 글자의 노랫말에 납작하게 압축되어 있던 위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 아이의 눈에서는 빛이 난다. ‘혜초’는 사람 이름이고 ‘천축국’은 나라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신이 나 들썩거린다.




하지만 이 노래의 압권은 따로 있다. 몇 번을 들어도, 다 알고 들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 마는 부분. “꼬부랑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이 바로 문제의 가사가 되겠다. 어느 집에는 단군 할아버지 대신 ‘당근 할아버지’가 오셨다고 하고, 또 어떤 집에는 말목 대신 ‘발목 자른 김유신’이 오기도 했다는데. 우리 집 다섯 살 아이는 ‘꼬부랑’을 세우는 쪽을 택했다.


"꼬부랑이 아니고 고구려야" 하고 슬쩍 손 봐줄까 생각도 해 봤다.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웃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막 글자를 읽기 시작한 아이이니, 제 실수를 알아차릴 날도 얼마 안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을 삼킨다. 마치 틀린 가사가 아이의 순수한 시절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그렇게 아이는 날마다 '꼬부랑'을 세웠다. 1절 초반에 등장하는 고구려 덕분에 아이는 매일 '꼬부랑'을 세워야 했다. 더 많은 위인을 알게 되고, 수많은 나라가 생겨났다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꼬부랑은 늘 함께였다. 그때마다 나는 당하고 또 당했다. 피식, 웃고 또 웃었다.


어떤 날은 알고도 웃을 수밖에 없는 그 대사를 들으며 생각했다. 웃음에 대하여.


아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 앞에서 이렇게나 속절없이 웃어버릴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분명 고된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없이 내가 혼자 하고 싶은 일들, 이를테면 커피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야말로 웃음이라는 단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나의 취향과 취미는 나에게 큰 행복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아이는 나를 웃게 만든다. 다 큰 어른을 깔깔 웃게 만든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냐며, 아이들의 눈은 어른이랑 달라도 한참 다르다며 예순이 훌쩍 넘은 내 엄마와 호들갑을 떨며 깔깔 웃게 해 준다. 다 알고 들어도 웃긴 아이의 말과, 다 알고 봐도 예쁜 아이의 표정. 그 앞에서 웃을 수 있다. 속절없이, 정말이지 어찌할 도리 없이.




날마다 꼬부랑을 세우던 다섯 살 아이는 어느새 여섯 살짜리 형님이 되었다. 아이는 요즘 위인들의 이름 대신 구구단과 야구 규칙을 입에 더 자주 올린다.


매일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아이의 세계는 나날이 확장된다.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면 쑥쑥 자라는 아이가 기특하다가도, 이 시절에 끝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아이의 ‘꼬부랑’을 떠올리면 금세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블루베리 발음이 어려워 부르, 부르 하며 말 연습을 하던 두 살배기 아이를 떠올리면, 웃다가도 눈물이 나는 건 애틋해서겠지.


아이와 함께 하는 날이 쌓일수록 우리 부부를 웃고 울게 했던 아이의 어록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우리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울고 웃을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까마득한 과거일 지금 이 시간을, 누군가의 눈에는 고된 시간처럼 보일 지금 이 시기를 우리 부부는 몇 번이고 더 들여다볼 테다. 속절없이 웃으며, 때로는 눈물지으며.


KakaoTalk_20250611_142001444.jpg 100명의 위인에 빠진 아이를 데리고 유관순열사기념관에 다녀온 작년 가을. 매일 '꼬부랑'을 세우던 아이는 이제 매일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댄다. 아이는 자란다. 매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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