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목욕탕 가서 세신 받기, 백팩 울러 메고 등산 가기,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 뚝딱 읽어버리기.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상상만으로도 넉넉해진 마음은 종종 아이들을 떠올렸다.
‘복직 전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 아이가 참 좋아할 텐데. 그동안 둘째 아이와 한 몸처럼 지내는 동안 첫째 아이와 못다 한 일이 많은데.’
마음이 유독 흔들리던 어느 봄날, 내 연약한 결심을 아이에게 내보이기로 작정한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를 불러서는 귀 한쪽을 끌어다 작전을 공유한다. 작전의 특이사항으로는 하나, 동생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우리 둘이서 나들이를 떠난다. 둘, 한 달에 딱 하루 유치원을 빼먹고 떠난다. 셋, 다녀오기 전후로 기밀 엄수. 동생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한다. 동그랗게 모인 입술과 굳어 있던 표정이 스르르 풀리더니 아이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뛴다. 신나는 일이 있을 때 튀어나오는 아이의 버릇. 놀러 가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데 동생 없이, 그것도 몰래 떠나는 나들이라니. 내일 당장 가는 거냐며 콩콩 뛰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 줘,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낮잠만 자기 시작하면 그때 떠나자.”
당장 떠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미리 아이를 흔들어놓았냐고 묻는다면, 내가 나를 못 믿어서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야겠다. 그동안 어린 둘째를 돌보느라 첫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적어 늘 속이 쓰렸던 건 진심이었다. 수유와 낮잠이 필요한 둘째 아이는 늘 내 차지였고, 첫째 아이는 아빠와 주말을 보내야만 했다. 아기와 외출하기에 날이 더워서, 혹은 너무 추워서 실내만 전전해야 했던 지난 일 년 동안 첫째 아이는 불편한 기색 한 번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토록 기특한 아이이건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말이다. 막상 둘째가 어린이집 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면 살살 꾀가 날 것만 같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겠다던, 한때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기특한 마음을 애써 못 본 척할 것 같았다. 마침 머릿속으로 달력을 휙휙 넘겨 가며 계산도 마쳤다. 그래 봤자 복직 전까지 다섯 번. 딱 다섯 번만 아이에게 내 자유시간을 내어주면 되는 것이니, 어디 한번 해 보자.
그리하여 아이에게 전해진 때 이른 고백. 앞으로 우리 같이 좀 놀자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일들 이제 하나씩 해볼 차례라고.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이는 동생이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그래서 이번 달에는 언제 놀러 가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내가 뜨끔하는 순간. “아무래도 목요일이 좋을 것 같아 엄마. 목요일에는 학원도 안 가고, 축구 다녀온 다음날도 아니니까 안 피곤해서 놀기 딱 좋을 것 같아.”
아이는 나와 함께할 날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산책로에서 가장 예쁘게 물든 낙엽을 주워 올리던 모습으로, 유치원에서 받아 온 사탕을 소중하게 품고 있다가 나에게 슬몃 내밀던 그날의 표정으로. 아이가 말하는 걸 듣고서야 아차, 하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그날을 그렇게나 기다렸던 것이다.
"선생님, 저 내일 유치원 좀 쉴게요! 안녕히 계세요!"
대망의 '그날'을 앞두고 하원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참을 종알거리는 아이. 빨간 광역버스는 어디에서 탈 거냐고, 그럼 동생 등원시킬 때 자기는 어디에 있어야 하냐고, 식당에 갔는데 메밀국수가 다 팔렸으면 어떡하냐고 묻고 또 묻는다. 내일 가뿐한 몸으로 놀러 가려면 얼른 자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나와, 알겠다며 눈을 감았다가는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며 다시 재잘거리는 아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비할 데 없다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문장을 곱씹어본다. 이 시절의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이 더 크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이 늘어난 것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