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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드물고 귀한 마음: epilogue

몹시 드물고 귀한 것과 부끄러운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지난날.

by 둥리지

딱 열 편.

연재도, 브런치북 발행도 처음인 만큼 욕심 내지 말되 멈추지도 말고 딱 열 편만 써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브런치북에 이름을 지어주고 소개글을 쓸 때만 해도 신이 났어요. 그저 기쁜 마음으로 아이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아이의 따스한 시선과 재치 있는 말속에서 노닐다 보면 글이 절로 완성되겠구나 생각했지요.


오산이었어요. 글을 쓰면 쓸수록 자판 위에 놓인 두 손이, 아이와의 추억 속에서 뛰어놀아야 할 마음이 멈칫거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몇 번이고 저를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제 안의 훈수꾼이었어요.


'너 그렇게 육아가 할 만하다고 말해도 되는 거니. 돌아갈 자리가 있으니 육아휴직도 할 만하다고 느낀 건 아닐까.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 속에서 육아를 했어도 네 발아래가 그저 꽃밭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훈수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엄마를 찾는 아이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며, 찰나의 희망사항을 부풀려 그것이 나의 유일하고 간절한 꿈인 양 말할 때도 있었어요. 아이 키우느라 많이 힘들겠다는 주변 사람들 말에 아니라고, 나름대로 좋은 시간이었다고 애써 항변하지 않는 날이 점차 늘어났어요.


사랑을 주면서 사랑을 받는 시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어요. 햇살이 내리쬐는 단지 내 산책로를 아이와 손 붙잡고 걸을 때 벅차오르던 마음을, 아이의 말 한마디에 깔깔거리며 웃는 재미를 차마 내보이지 못했어요. 그냥 봐도 예쁘고, 알고 보면 더 예쁜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버릇처럼 말했어요. 예쁘긴 뭘 예뻐, 내 자식은 내 눈에나 예쁘지, 됐어 뭘.




그러던 어느 날 손원평 작가님의 소설 <아몬드>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게 됩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결핍 없는 내면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한때는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다. 세월을 거치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부모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몹시 드물고 귀한 것과 부끄러운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려봅니다. 실은 팔베개한 채로 아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우는 시간이 좋았고, 아이의 시선과 관심사를 따라 아이의 눈높이로 한 번 더 살아보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말이죠.


깨달음은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자, 좋았다고 글로 남기자. 엄마의 시간과 체력을 갈아 넣어야만 하는 시간 혹은 끝없이 고되기만 한 과정으로 알려진 육아가, 실은 좀 멋지고 해 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고 끝까지 써 보자.


다짐은 바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아이의 말속에서 기쁨과 재미를 찾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 하나만 주워 올려도 제법 멋진 날이 되어버리는 마법을 꼭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나날도 꼭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함께 품어 봅니다. 얼른 커 버렸으면 좋겠다고, 다 키워놓고 자유로운 시간 좀 누리고 싶다고 버릇처럼 내뱉던 말들을 꾸욱 삼켜봅니다. 대신 자라나는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좋았다고,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에 꼭꼭 새겨봅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제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시고, 감상과 경험을 나눠주신 여러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설레는 일인지 여태 몰랐어요. 다정하게 바라봐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들이 각자 품고 계시는, 몹시 드물고 귀한 것들이 작가님들을 보다 좋은 곳으로 이끌어주길 응원드리며 제 첫 브런치북을 마무리합니다.


KakaoTalk_20250618_141530368.jpg 유치원에서 자투리 종이에 편지를 써온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해보다 더 더 사랑하는 건 뭐야?" 아이가 답했어요. "우주만큼 사랑한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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