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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Mar 02. 2019

이메일은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것임을 잊지 말자

메일 하나로 조직의 신뢰를 실천하는 방법

재직시절 나는 자주 남자 팀장으로 오해받곤 했다. 


파트너사와 몇 주간 메일을 주고 받은 후 첫미팅을 하면 어김없이 "최팀장님 여자분이셨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따금 부산 지점에 출장을 가면 "남자 팀장님이신 줄.. "이라고 말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사내 메신저로 그렇게 일을 많이 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성별을 오해받는 데는 ‘최두옥’이라는 중성적인 이름이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딱딱한 ‘다나까’ 체의 메일도 한몫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매일이 늦었습니다. 지난 번 전달해 주신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내용에 몇몇 모호한 부분이 있어 첨부파일과 같이 더블체크드리니, 내일 11시 전에 회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첨부파일은 보안과 용량 이슈로 오늘 저녁 6시까지만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하였습니다' '드리니' '-한 부분이 있어' '-이슈로' 등등...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을 법한 오래된 표현과 어미들이 가득한 딱딱한 메일. 오고가는 메일 모두가 이 모양이니, 나를 남자 팀장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난 일이란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다. 


솔직히 그땐 일이란 그렇게 명확하고, 중립적이고, 정확하게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딱딱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상황이나 상대의 상황을 감정적으로 서술하는 말은 가급적 제한하고, 1분 안에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짧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고려' '회신' '다운로드' '이슈' 처럼 동사의 뜻을 가진 왜래어 명사가 많이 쓰였고, 우리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문장구조가 되곤 했다. '자료의 다운로드는 내일까지이므로, 이번 주 안에는 착오없이 회신 부탁드립니다' 같은 기형적인 한국어 문장이 만들어졌다. 형식은 한국어지만 우리의 말하는 습관과는 동떨어진 문장 말이다.

위의 문장은 명사 중심으로 쓰여져서 불필요하게 말이 어렵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에게는 이 조차도 익숙하겠지만, 1-2년차 신입들이 본다면 '번역기 돌린 건가?' 생각할 만큼 실 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문장이다. 만약 명사가 아닌 동사 중심의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바꾼다면 '자료는 내일까지 다운받을 수 있으니까, 이번 주에는 꼭 회신해 주세요' 정도가 될 것이다.


게다가  ‘-에요’ '-하세요' 같은 문체는 가급적 피했다.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그런 문체는 단호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감정이 묻어나는 문체는 고등학교 돌림일기에나 쓰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마트워크 디렉터로 일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꼈다. 


내 메일을 읽을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거진 ‘사람’이라는 자각. 우리는 부드럽고 사려깊으면서도 얼마든지 명확할 수 있다는 자각을 해서다. 익숙함 때문에 아직도 나는 ‘다나까’ 체를 주로 쓰지만, 상대와의 경력 차이가 클수록 나는 부드러운 ‘에요’체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짧게라도 지금 우리가 일하는 상황을 알려주고, 바라는 건 명확하게 말하지만, 안한다고 큰 일이 나는 건 아니라는 시그널도 같이 주려고 노력한다.


“이런! 답변을 넘 오래 기다리셨죠. 지난 번에 보내 주신 자료가 너무 좋아서 빠져서 보느라 정작 회신 드리는 걸 잊고 말았네요. 기다리게해서 죄송하고, 자료 꼼꼼하게 챙겨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다만 내용 중 몇 부분은 저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여쭤요. 내일 아침 11시에 이 자료로 내부 미팅을 할거니까 그 전에만 답 부탁드릴께요. 첨부파일은 오늘 저녁 6시 전까지는 편하게 다운 받으실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이렇게 쓰는 건 아니지만, 요즘 일하는 사람들과 주고 받는 메일은 이런 식이다. 약간 길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쓰던 것 보다는 훨씬 편하고 협조적이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쓴 메일 같다. 명확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요청의 맥락을 추가해서 더 친절해졌다. 문장이 길어서가 아니라 서비스 마인드가 들어가서다.



글 한 줄을 통해서도 믿음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가 일터에서 ‘믿음’을 이야기할 때. 

이는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1차원적인 수준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나를 존중하고 대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거라는 생각, 나의 상황을 알면 협조해 줄 거란 생각, 사적인 편의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결과를 의도하지 않을 거란 생각. 무엇보다 상대도 나 처럼 인간적이고 양심적일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 신뢰를 가지고 메일을 쓰면,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한결 마음이 가볍고 부드러워진다.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메일 한 줄, 메세지 한 줄의 행간에서 배려가 드러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잘 될 수 밖에 없다. 두 에너지의 대립이 제로가 되면 힘이 한 방향으로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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