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May 28. 2017

너무 조용한 사무실은 소리를 소음으로 만든다

스마트오피스 도입 전, 전통적인 사무실 관찰기 

금요일 오후 4시.

한 기업의 지원부서 사무실은 흡사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교실을 연상케 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책상의 40% 정도가 비어있다는 것. 아마도 외근이거나 휴가중이거나 다른 건물 회의실에서 미팅중인 사람들의 책상일겁니다. 


너무 조용한 사무실은 소리를 소음으로 만든다


직원들이 생활소음 수준으로 간간히 대화를 주고받지만, 이 곳은 전반적으로 조용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조용하니까 직원들이 일하는 자연스러운 소리들조차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됩니다. 주인이 외근 나간 책상에서 몇 번씩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 두 칸 떨어진 손빠른 직원의 타이핑 소리, 심지어 레이저 프린터가 종이를 밀어내는 소리 조차 귀에 거슬립니다. 노트북을 보면서 전화 통화를 해야하는 한 직원이 제 자리에서 세칸이나 떨어져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대화 내용이 자꾸 귀에 들려와서 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 소음이 존재하는 카페나 호텔 로비였다면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자연스러운 소리인데, 웅성웅성하는 소음조차 없는 사무실이다 보니 생활 소음도 거슬리는 소음이 됩니다. 


흔한 우리나라의 대기업 사무실 모습 (이 글과 상관없음)


연필 떨어뜨리는 소리조차 눈길을 끌 것 같은 분위기는 왠지 숨이 막힙니다. 저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헛기침과 재채기마저 어떻게 들릴까 신경쓰이는 조용함은 편안하기 보다는 답답하고 부담스럽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보낸 문자에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 저는 들키면 안 될 무언가를 들킨 듯 깜짝 놀라곤 합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한 시간에 한번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숨을 쉬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쉬고 싶지만 갈 곳이 없다


초집중 상태가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던 저는, 중간중간 자연스러운 소리가 허용되는 공간으로 가서 쉬고 싶었는데 이 건물을 나가지 않는 한 그런 공간은 없습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홀은 침묵의 무게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지만, 큰 소리로 전화받는 두 세 명이 항상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서 듣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풀버전으로 들어야만 합니다. 담배라도 피면 건물 옥상이라도 올라갈텐데, 담배를 못 피는 저는 기껏해야 건물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갈 뿐입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내려가야해서 부담스럽습니다. 결국 저는 제 자리에서 준비해 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틉니다.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정쩡한 칸막이가 소음을 더욱 부추긴다


사무실의 책상은 5개X2줄로 10개의 책상이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는 형태입니다. 옆 자리와는 칸막이가 없고, 앞 자리와는 50-60cm 높이의 칸막이가 앞사람과 저를 구분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앞/옆 책상과 모두 붙어있지만, 실질적으로 앞 책상에 앉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전혀 보이지도 않고 대화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앞 책상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의자에서 일어나서 어정쩡하게 칸막이에 몸을 기울인 자세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사람들이 책상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머리 위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저쪽으로 가서 대화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아도 같은 책상 그룹에 있는 직원들과는 빠르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자리와의 칸막이가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높게 느껴집니다. 


시끄러운 걸 알지만 책상을 떠날 수 없는 전화통화 


제 옆에 앉은 한 직원은 특정 아이템의 수출입 때문에 한동안 외부 사람들과 꽤 많은 전화통화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왠만하면 엘리베이터홀로 나가서 통화하면 안 되나'라고 속으로 불평을 했는데요, 막상 전화받는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갑니다. 그 직원은 노트북에 열어 놓은 엑셀 수치를 확인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한 손은 전화기를 한 손은 마우스를 잡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중간중간 엑셀 내 특정 단어 검색을 위해 타이핑을 해야했는데 한 손으로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미팅룸으로 가세요'라고 하기엔 두 손이 이미 너무 바빳습니다. 어깨와 귀 사이에 전화기를 끼고 타이핑을 하기도 했는데 중간에 전화기를 떨어뜨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전화와 연결된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 업무중인 모습


만약 그가 이런 방식으로 전화통화를 자주 해야한다면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핸즈프리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가 오면 핸즈프리를 빠르게 귀에 걸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노트북을 들고 포커스 부스 같은 독립된 공간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더군요.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워크에서 말하는 '자율'의 전제는 합의된 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