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오피스 도입 전, 전통적인 사무실 관찰기
금요일 오후 4시.
한 기업의 지원부서 사무실은 흡사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교실을 연상케 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책상의 40% 정도가 비어있다는 것. 아마도 외근이거나 휴가중이거나 다른 건물 회의실에서 미팅중인 사람들의 책상일겁니다.
직원들이 생활소음 수준으로 간간히 대화를 주고받지만, 이 곳은 전반적으로 조용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조용하니까 직원들이 일하는 자연스러운 소리들조차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됩니다. 주인이 외근 나간 책상에서 몇 번씩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 두 칸 떨어진 손빠른 직원의 타이핑 소리, 심지어 레이저 프린터가 종이를 밀어내는 소리 조차 귀에 거슬립니다. 노트북을 보면서 전화 통화를 해야하는 한 직원이 제 자리에서 세칸이나 떨어져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대화 내용이 자꾸 귀에 들려와서 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 소음이 존재하는 카페나 호텔 로비였다면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자연스러운 소리인데, 웅성웅성하는 소음조차 없는 사무실이다 보니 생활 소음도 거슬리는 소음이 됩니다.
연필 떨어뜨리는 소리조차 눈길을 끌 것 같은 분위기는 왠지 숨이 막힙니다. 저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헛기침과 재채기마저 어떻게 들릴까 신경쓰이는 조용함은 편안하기 보다는 답답하고 부담스럽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보낸 문자에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 저는 들키면 안 될 무언가를 들킨 듯 깜짝 놀라곤 합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한 시간에 한번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숨을 쉬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초집중 상태가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던 저는, 중간중간 자연스러운 소리가 허용되는 공간으로 가서 쉬고 싶었는데 이 건물을 나가지 않는 한 그런 공간은 없습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홀은 침묵의 무게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지만, 큰 소리로 전화받는 두 세 명이 항상 그 공간을 채우고 있어서 듣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풀버전으로 들어야만 합니다. 담배라도 피면 건물 옥상이라도 올라갈텐데, 담배를 못 피는 저는 기껏해야 건물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갈 뿐입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내려가야해서 부담스럽습니다. 결국 저는 제 자리에서 준비해 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틉니다.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사무실의 책상은 5개X2줄로 10개의 책상이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는 형태입니다. 옆 자리와는 칸막이가 없고, 앞 자리와는 50-60cm 높이의 칸막이가 앞사람과 저를 구분합니다. 물리적으로는 앞/옆 책상과 모두 붙어있지만, 실질적으로 앞 책상에 앉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전혀 보이지도 않고 대화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앞 책상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의자에서 일어나서 어정쩡하게 칸막이에 몸을 기울인 자세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사람들이 책상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머리 위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저쪽으로 가서 대화해 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아도 같은 책상 그룹에 있는 직원들과는 빠르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자리와의 칸막이가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높게 느껴집니다.
제 옆에 앉은 한 직원은 특정 아이템의 수출입 때문에 한동안 외부 사람들과 꽤 많은 전화통화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왠만하면 엘리베이터홀로 나가서 통화하면 안 되나'라고 속으로 불평을 했는데요, 막상 전화받는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갑니다. 그 직원은 노트북에 열어 놓은 엑셀 수치를 확인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한 손은 전화기를 한 손은 마우스를 잡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중간중간 엑셀 내 특정 단어 검색을 위해 타이핑을 해야했는데 한 손으로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미팅룸으로 가세요'라고 하기엔 두 손이 이미 너무 바빳습니다. 어깨와 귀 사이에 전화기를 끼고 타이핑을 하기도 했는데 중간에 전화기를 떨어뜨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가 이런 방식으로 전화통화를 자주 해야한다면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핸즈프리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가 오면 핸즈프리를 빠르게 귀에 걸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노트북을 들고 포커스 부스 같은 독립된 공간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