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근로시간 단축법의 의미
요즘 스마트워크 분야에서는 7월부터 시작되는 법적 노동시간 단축이 키워드다. 쉽게 말해서 앞으로는 법적으로 정해진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12시간으로 줄어들었다는 건데, 하루에 3-4시간씩 야근을 하는 근로자나 주말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 본의아니게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편법을 궁리하는(?) 기업도 종종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일자리를 나누고 국가 차원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려는 정부의 취지를 이해하고 정면으로 조직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즉, 조직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그동안 낭비되었던 시간과 인력 리소스를 제거하기 위해 사무실/제도/리더십 등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오래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우리 사회가 '제대로 효율적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회로 변하는 요즘. 이 과정을 반기는 사람도 있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오늘은 지난 4월에 다녀온 네덜란드의 업무시간 변화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스마트워크 분야에서 네덜란드는 우리나라보다 약 7-10년 정도를 앞서가 있다고 보는데, 업무시간과 관련된 제도 변화는 그보다 더 빨라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에 네덜란드의 경제 상황은 나빠질 때로 나빠져서, 평균 청년 실업률이 13% 까지 올라갔다. 최근 몇 년간의 수치가 한 자리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심각한 상태다. 당시 네덜란드의 수장은 '뤼트 뤼버르스'라는 43세의 젊은 총리였는데, 이런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집권 초기 네덜란드 전역을 아우르는 노사 대협약을 추진하게 된다.
이 협약의 핵심은 두 가지: 노조는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를 줄이고(임금동결),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일자리 나누기)이다. 실제로 기업은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임과 동시에 시간제 근무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늘려갔고, 정부도 법정 노동시간을 36시간으로 줄였다. 그리고 시간제로 일을 하더라도 종일제 근로자와 하는 일이 같다면 급여체계나 연차와 같은 혜택들을 동등하게 받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이 조약이 바로 '바세나르 조약'이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이후 수년에 걸쳐 국민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시간제 근로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안착시킨 결과, (1) 시간제 노동에 대한 네덜란드 국민들의 선입견이 사라졌다. 시간제 고용은 불안정하고 불평등하다는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인식과는 달리, 시간제 노동을 통해서 자신과 가족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고 시간제 노동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실제로 우리가 이번에 만난 네덜란드 직장인 중에는 일주일에 3-4일만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시간제 계약을 통해서 겸업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스마트워크 리서치를 위해 처음 네덜란드를 방문했던 2010년에, 이미 네덜란드는 정규 직원들의 겸업이 어렵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2) 네덜란드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났고, 청년과 여성들의 고용이 늘어났다. 유럽이나 미국은 한국과 다이나믹한 문화 차이가 있을 거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용에 있어 여성과 청년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것은 네덜란드나 한국이나 비슷하다. 즉, 여성과 청년들은 30대 이상의 남성에 비해서 일하는 데 있어 시간적 사회적 제약이 많은데, 시간제 근로가 늘어나자 이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다. 국가적으로는 인력의 유실을 막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런 부단한 노력 덕분에, 네덜란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용률이 5% 이상 늘어났고, 경제성장률 역시 유럽엽합(EU) 평균인 2.1%를 훨씬 상회하는 3.1% 를 찍었다.
내가 네덜란드를 처음 방문한 건 2005년 즈음인데, 네덜란드의 첫 인상은 바로 변화에 대한 오픈 마인드였다. 자기들끼리는 편한 네덜란드어를 쓰다가도 외국인인 내가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 안을 내면, 'WHY'를 논의하며 며칠을 보내기 보다는 'HOW'에 집중하며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 변화하지 않을 이유 보다는, 변화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Why not!'을 말하는 사람들.
네덜란드에서 마리화나, 성매매, 안락사, 빈집거주가 불법이 아님에도, 그것들로 인한 범죄나 사회문제는 다른국가들보다 낮은 이유도 크게 보면 이유가 비슷하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 대해서 열려있는 네덜란드인의 오픈 마인드.
근로시간 단축법 덕분에(?)스마트워크로의 관심이 쏠리는 요즘, 어떻게 그런 오픈 마인드가 국가 전반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고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