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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Oct 19. 2017

밤이면 밤마다

끝나지 않는 감성 이어달리기

우리가 밤을 지새운다는 건 술래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바쁜 시간을 쓰는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낮동안 내내 삼켜뒀던 크고 작은 통증들이 스멀스멀 목구멍으로 기어올라오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아 기분을 가라앉혀 본다. 차라리 시끄러운 음악을 꽝꽝 틀어놓고 통증을 날려보려 애쓴다. 어떤 날엔 이기지도 못할 술 한 잔에 기대어 이내 눈물로 토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밤은, 그러니까 감성이 먹구름처럼 내려앉은 그런 밤에는 보통의 날보다 혹은 맑은 낮보다 바쁘다. 왜 밤이면 밤마다 우리는 울렁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잡히지도 앉는 술래를 찾아 헤매는 걸까.


혹자는 그럴 시간에 책을 보거나 할 일을 미리 해버리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대답 한 번쯤 해봤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그래봤지, 뭘해도 집중이 안돼.' 나는 그랬다. 조용한 동네에 살아서 집중하기도 좋고, 자연이 가까이 있어서 공기도 맑은데 왜 나의 밤은 먹먹한 회색일까. 그동안에는 사실 글도 잘 써지지 않고, 책을 읽어봐야 같은 문장만 여러 번 읽힐 것이요 일을 한다는 건 어차피 망칠 일을 사서 하는 격이었다. 결국 마음의 부산함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습관성 불면증과 그로인한 우울증상이 동반된다고 한다. 나 역시 2년이 넘도록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스운 얘기지만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문득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 전혀 시차를 느낄 수 없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나라도 말하기도 한다. 딱 필요한 순간에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지도.


밤의 술래, 마음의 부산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 출처가 궁금해지다가 그 보다는 원인에 초점을 맞춰본다. 감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철학이나 심리적인 분석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감성(感性)이란 단어가 '성질이나 성격의 본질을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고, 이는 이성이나 지성과 대치된다고 하니 분명한 건 감성이 충만한 상태가 되면 내 안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열린 상태일 것이다. 귓가에 맴도는 누군가의 목소리나 지난 순간들에 겹쳐 오는 소리와 소음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 눈빛, 풍경과 상황, 어떤 찰나들, 또 입가에 머문 전하지 못한 말이나 이미 뱉어낸 말들, 누군가 들려 준 이야기들이 더 또렷해 질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 때 스쳤던 살갗의 느낌이나 누군가와의 부딪힘, 부드럽고 날카로웠던 그 날의 촉각들도 그럴 것이다. 뿐 아니라 사실의 기억이나 그 순간 느꼈던 기분, 감정들도 분명해질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 말이다. 감성이 무르익어지는 그 밤에는.


술래를 꼭 잡아야 할까,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그 고약한 술래가 잡히기는 할까?

아마도 이것 역시 고단한 수고일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진부한 말이면서 한 편으로 비겁할 수도 있는 만만한 표현이 떠오른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시간이 약이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표현이다. 너무하다 부정하기에 시간이란 세월이 해결해 준 일이 많았고, 그렇다고 긍정하기에 그 시간이 언제나 지나갈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그 술래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가로등이 되어준다.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쏟아져버린 어둠 속에서 그저 막막하게 술래를 찾아다닐 때, 시간은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쯤에 서있나 인식할 수 있도록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째깍째깍, 단 한 번도 기다려주지 않고. 무심하고도 시크하게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직 술래를 찾지 못해 마음이 부산하다면, 그냥 바쁜 채로 마음을 느껴보면 어떨까.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나만의 방식을 선도할 생각은 애초에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술래를 찾아 해메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인지도 알고, 왜인지도 알아서 더 헷갈리는 술래잡기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알려주는 사실을 중간 중간 가로등 삼아 현실을 본다. 그럴 때마다 유리문이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려다 머리를 쿵 부딪힌 거마냥 정신이 든다. 현실은 때로 감성을 이기기도 한다. 감성에 겨워서 허우적 거리던 몹쓸 마음에 현실이란 녀석이 강력한 동아줄을 내어주더란 말이다. 그 줄을 잡고 올라오는 날이 많아지면 어느 사이에 우리의 술래는 과거가 되어 희미해지거나 무의미해 지기도 한다.

 

우리는 오늘과 이별하고 내일과 만났다가 또 이별한다. 감성은 오다가 깊어졌다가 사라져버린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또 밤을 맞이한다. 그 밤의 술래는 다시 마음을 바쁘게 하며, 결국 우리는 어제가 될 오늘을 만나 이별하고 내일을 만난다. 감성은 끝나지 않고 이어달린다. 그러니 마음이 우울해질 때면 '아, 나는 지금 술래를 찾아 열심히 달리고 있구나!'하고 스스로를 응원해 보길 바란다. 어느 날엔가는 그 곁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으니 우린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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