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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Feb 13. 2018

어바웃 타임

주먹 쥐고 시간여행, 지금이 그때다

영화 어바웃타임 (About Time, 2013)


시간여행의 가장 큰 교훈은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

오늘이 나의 가장 특별한 마지막 날이고, 그래서 더욱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

- 영화 '어바웃 타임' 대사 요약


엔딩으로 가는 길목에서 읊는 주인공 팀의 메시지다.

영화는 시종일관 일상의 순간들을 반복적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태도로, 지극히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주인공 팀에게는 이미 백옥 같은 피부와 탐스러운 오렌지 색 헤어 컬러, 게다가 영국식 담백한 옷차림에 적당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이 부러울만한 요소의 정점을 찍는 것은 단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비밀이었다. 사실 그 비밀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을 되돌릴 만큼 부족하거나 어설프지 않은데, 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을까 개인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괜찮은 인물이었다. 아무튼 순리적인 삶과 시간여행을 통한 수정된 삶으로 주인공 팀의 통과의례가 드라마틱하게 소개되는 영화 '어바웃 타임'.

내게 제목부터 끌리는 인생영화임엔 틀림없다.


이야기는 팀의 아버지가 집안 남자들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커밍아웃하는데서 시작된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이제 익숙한 소재여서 '만약 내가 시간여행의 능력을 갖게 된다면?'이라는 물음으로 이미 대답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 질문에 튀어나오는 대답은 '그때 그 선택을 바꾸고 싶다'가 대부분이었다.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는 태도를, 관계를, 나아가 삶을 통째로 바꿔놓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그 선택 거리들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크지 않고, 어쩌면 대단하지도 않은 순간의 선택들이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엄청난 시그널이었으므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우리는 잘 살고 싶어 한다. 적어도 내게 잘 산다는 의미는 최소한의 실수와 최적의 판단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후회하지 않고, 모두가 평화로운 삶이 그것이다. 이렇게 살고 싶어서 할 수 만 있다면 잘못된 판단을 시간여행을 통해 뒤집고 싶기도 했었다. 영화 속에서도 팀의 능력으로 친구나 가족의 불행을 다행으로 바꿔놓기도 하고, 팀 스스로의 어긋난 순간들을 바로잡기도 했으니까.

90년대에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로 신인 개그맨 이휘재를 스타덤에 올린 '인생극장'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다소 예민한 주제를 코믹하고 설득력 있게 재연한 인기 콩트였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서 '인생극장'이 오버랩되었던 건 지금까지 물고 늘어진 그 '선택'이란 단어 때문이다.


선택에는 옳고 그름이라는 동사가 연관되곤 한다.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과연 가장 옳은 선택은 무엇일까는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속에 늘 화두로 떠오른다. 어떤 선택도 후회가 따른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나마 결과에 대한 수긍이 빠른 편이지만 신중하고 진중하고 계산하고 염두해 내린 사람들은 선택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처럼 살았다가 전자처럼 살아가는 축에 속한다. 영화 속에서 극작가 해리의 연극무대 위에서 벌어진 배우들의 연이은 실수 장면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역시 어차피 일어날 일이면 어떤 선택을 하던 당장이 아니어도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후로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달까. 오히려 지금은 선택이 빠른 편에 속하게 되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더 빨랐겠지만.


선택의 옳음과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 시간여행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되돌려야 한다 판단되는 기준은 뭘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팀은 그 엄청난 능력을 갖고도 쓰지 않으며 살기로 했다. 아니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는 인생의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에 온 가장 특별한 날이라고 받아들이며, 제일 즐겁게 주어진 순간을 만끽하겠다는 팀의 의지였다. 기준은 없었다. 기울기가 다를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어느 선택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기울기, 어느 쪽에 마음이 울리는가에 대한 기울기, 가장 즐거운 내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편중이었다.



다시금 시간을 애틋하게 써야 하는 이유를 일러주는 영화, 의미도 메시지도 부드럽지만 강력했다.

더불어 영화 전체에 만연된 색감, 구도, 스타일, 음악까지 더할 나위 없이 러닝타임을 충분한 시간여행으로 안내했다. 덧붙이자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물론 극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음악에도 귀가 머무는데, 런던 지하철 플랫폼에서 노래하던 뮤지션들의 노래, 팀과 메리의 결혼식 장면에서 흐르던 나의 페이보릿 송 '일 몬도(Il Mondo)', 그리고 이에 버금가는 엔딩곡의 여운이 영화의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들었다.


지금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 주먹을 꽉 쥐고 원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 순간으로 이동할 수는 없지만 다시는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짐이 설 것이다. 선택이 어려운가? 천천히 자신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라. 이미 선택은 끝났을지 모른다.


글|사진 작가두콩(doooo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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