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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an 25. 2023

존재를 위한 존재

그림자 위로 (shadow)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 채 살고 있는 심리적 존재, 정신분열이 만들어낸 존재를 위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고 후기한다. 유명 소설가로 등장하는 장재열은 강한 자아와 유쾌한 순발력 그리고 몰랑한 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재열의 직업이 소설가인 것도 어쩌면 작가의 적극적인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소설 하면 허구의 이야기를 마치 사실처럼 그려내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고, 있지도 않은 세상과 인물에 매료되고 마니까. 그래서 나는 장재열이란 캐릭터의 성격, 배경, 외모까지 모두 그의 직업에 가장 어울리고, 무엇보다 그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 상태와도 꽤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을 하면서 나는 시종일관 그가 부러웠던 부분이 있었다. 뭐냐. 그건 바로 그의 '정신분열'이었다. 


초반부터 그의 곁에는 한강우라는 고등학생이 그를 따라다닌다. 그것도 불쑥. 한강우는 장재열이 밥을 먹거나 운전을 할 때, 또 만나지 않을 때도 수시로 전화통화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심지어 한강우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장재열이 그를 대신해 고백을 해주기도 하고, 한강우의 위태로운 가정사에도 과감히 뛰어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재능을 응원하고, 슬픔을 위로받고, 시간을 함께한다. 불쑥. 느닷없이 말이다. 짐작했겠지만 장재열에게 한강우는 그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이며, 현재의 공황을 해소해 주는 탈출구이다. 의학적으로는 스키조(schizophrenia:정신분열)라고 하는 한강우는 장재열에게 누구보다 강한 삶의 이유이며, 자존감의 상징이었다.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스키조'는 사실 주인공인 장재열뿐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크거나 작게 드리워진 트라우마로 구현되기도 하다. 증상은 다르지만 시작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이를테면 정신과 의사로 등장하는 지해수는 쿨하고 시크하며 인간미 넘치는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도 갖고 있다. 성적 트라우마.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간호하던 엄마의 외도를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이나 섹스를 절대적인 배신과 더러움의 상징처럼 인지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2년을 넘게 연애를 해도 큰 용기를 내어 겨우 가벼운 키스정도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트라우마로 인한 엄청난 거부감으로 깊은 사랑은 나눌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또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수광 역시 7살 때 발견된 불안증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으로 인한 상처와 긴장하면 찾아오는 자신의 증상으로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 외에도 품행장애인 오소녀나 억울한 누명으로 복수만 생각하는 장재범 등 등장인물이 안고 있는 정신적 불만과 불안과 불편은 모두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의학적 정의를 무시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니 나는 어떤가 생각해 보았다. 가끔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은 밝거나 어두운 조각으로 서로 조립된다. 그것들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져 어떤 날엔 깨고 싶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어떤 날엔 당장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두렵다. 꿈속 생생한 이미지들은 나로 하여금 현실감각을 잠시 잃게 하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할 땐 더 큰 덩치로 불어나 나의 컨디션을 잡아먹곤 한다. 심리적 그림자인 것이다. 어쩌면 내게도 존재하는 그림자를 장재열은 실제화시켜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지점이 부러웠다. 정신분열을 앓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병적으로 앓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분열적 존재를 나도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대고 싶다는 의미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만큼 많은 사연도 따른다. 어떤 이유로 상처를 받기고 하고 주기도 할 것이며, 인정과 불인정 사이에서 지독한 싸움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받아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 외로움은 끊임없이 허구의 존재를 갈구한다. 장재열만의 한강우처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아마도 우리에게 이럼에도 저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은 아닌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어딘가 부족하거나 혹은 망가졌더라도 그런 나 자체를 받아주고 사랑하면 다 괜찮다는 위로. 온전한 자아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또 다른 존재는 우리 발밑을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절대적인 친구, 그림자처럼 말이다.







- 2022년 5월 작성글, 서랍에 묵혀둔 글을 이제야 발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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