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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un 12. 2018

허스토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씨네Q _ 신도림 테크노마트 시사회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로,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이유영 등이 출연하며, '내 아내의 모든 것'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민규동 감독이 연출했다. 오는 27일 개봉.

-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우리는 모르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

용서는 구하는데서 끝이 아니라 받아들여질 때 끝이다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하관)의 '하'자와 부산의 '부'자가 합쳐져 이름 지어진 '관부재판'. 어쩌면 관객의 긴장감은 인트로에서 보여 준 이 몇 개의 문장들로 이미 조심스럽고, 이미 안타깝고, 이미 분노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철저히 여성의 내면적 힘을 강조하고 있었다. 첫 장면에 나오는 부산의 여성 기업가들의 대화는 여성의  사회적 능력에 주목시켰고, 기존 남성에게만 빗대어지던 의리나 배포에 관한 성질이 여성에게 완벽히 옮겨져 있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기에 그렇지 못했던 과거 속 '그녀 이야기'로 귀 기울이는 초입에서 '평등'에 관한 뉘앙스를 던지고 있었다. 영화의 대주제인 일본군 위안부로 침해된 여성 인권에 대한 회복(본래대로 돌아오다)의 당위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허스토리'는 초지일관 과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말로 다 못할 고통으로 여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동안 비슷한 주제로 진행된 영화들과 비교해 자극적인 회상 장면이 없어서 나는 그녀들의 힘들었던 과거가 더 지독하게 느껴졌고, 더 아프게 다가왔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었다. 어차피 우리에게 그 참혹한 시절을 비슷하게 그려내고 들려준다 해도 알 수도 없고, 감히 알 것 같다 말할 수 없기에 감독은 그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더 큰 숙연함을 전했다.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대사로 읊어지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가슴이 졸여졌고, 내뱉는 숨소리에 함께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겨야죠! 이겨야 할매들 분이 안 풀리겠습니까?"


정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고군분투했던 원고단 단장 문정숙의 대사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과 분을 푸는 것이 그 어떤 보상금보다 중요했기에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그녀는 달렸다. 그런 문정숙 단장에게 '징그럽다' 말하는 국선 변호사의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거기서 '징그럽다'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흉하고 끔찍한 존재'는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어떤 시절에, 인간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그 무슨 상황에 있어 벌이고,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 정의를 위한 집요함을 대신하는 동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도 하기 어렵고, 끝까지 할 수 없는 그 징그러운 일을 6년의 세월 동안 싸워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영웅을 다루지 않았다. 영웅을 다룰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실화 속 인물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알아야 한다고 징그럽게 가르치고, 죄를 지었다면 벌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많이 울었다. 여운이 남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없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과정과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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