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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광 Oct 11. 2016

노가다 어벤져스

그런 게 팀워크 아니겠어?

#지각
 

인력대기소는 5시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나는 5시40분에 들어섰다. 이미 10명도 넘게 앉아 있었다. 소장은 몇몇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내가 오자마자 팀이 꾸려졌다. 나를 포함한 6명이 한 팀으로 묶였다. 내가 가장 지각이었다.
 
 
 
#노가다꾼의 풍모
 
까맣게 탄 피부, 불만에 찬 눈빛, 떨떠름한 표정, 술 담배를 많이 해서 보랏빛으로 변한 입술과 황달이 온 흰자위, 운동화를 신었지만 등산가방을 멘 모습, 작업복인지 평상복인지 구별이 잘 구별되지 않는 티셔츠. 노가다꾼들의 한결같은 풍모다. 나도 다를 바 없다. 여섯 명의 노가다꾼들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작업지시
 
현장소장은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처음 보는데? 이런 일 해본 적 있어? 믿음이 안 가는데. 자넨 그럼 ‘조적’ 해. 조적일 해본 적 있어? 벽돌들 짊어지고 계단 올라갔다 내려갔다만 하면 돼.”
 
김씨 아저씨가 말렸다. “조적은 안 해봤을 것 같은데, 처음 해보는 사람이 하면 위험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그건 제가 하죠.”
 
현장소장이 수긍했다. “그럼 자넨 청소라도 해. 청소는 해본 적 있어? 삽질은 할 줄 알아? 잘해? 이거 믿음이 안 가서 원... 저쪽에 반장님 있으니까, 반장님한테 가서 작업 지시 받아.”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왜 반말이신지.’
 
 
 
#우리 아들이
 
‘반장님’이라는 분은 쿨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청소하면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치우면 되는지, 몇 가지 작업 내용을 일러주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저 밑에서 다른 일하고 있어야 하니까, 혼자서 잘하고 있으라고. 쉬엄쉬엄 해. 내가 이따 와서 잘하고 있는지 볼 거야.”
 
5분가량 반장님은 나를 지켜보고 앉았다. “그렇지, 그렇게만 하면 돼. 그런데 너 몇 살이냐? 26살이면, 우리 큰아들보다 10살 어리구만. 그런데 너 어쩌다가 막노동 다니게 됐냐? 우리 아들은 26살에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에 입사했어. 지금은 과장이야. 회사에서 유학도 보내 주고, 공부도 시켜줬어. 카이스트에서 대학원 과정으로 금융공학도 공부했어. 지금은 결혼해서 애도 있지. 명절이다 뭐다 하면서 용돈도 자주 보내줘.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졌어.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며느리한테 휘어 잡혀 사는 것 같아.”
 
나는 열성으로 대꾸한다. “대단하네요.”
 
반장님은 계속 아들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이번엔 둘째 아들 이야기다. “우리 둘째 놈은, 보고 있으면 한심해. 공무원 시험 본다고 공부하다 때려 치고, 지금은 어디 중소기업 다니는데 월 200만원도 못 벌어. 보고 있으면 답답해. 서른 넘은 아들한테 아직도 내가 용돈을 준다니까. 게다가 그놈이 결혼도 일찍 했어. 그 돈으로 뭘 하겠어. 휴가도 제대로 못 가. 오죽하면 내가 용돈 주면서 ‘이 돈으로 네 부인이랑 어디 휴가라도 다녀와라’라고 말했다니까. 썩을 놈이 아버지한테 돈 빌리고 싶을 때만 나타난다니까. 내가 나이 70은 넘게 먹었어도 아직까지 이렇게 돈 벌면서 사니까 얼마나 좋아. 어디 눈치도 안 보고.”
 
 
 
#사람이 싸가지가 있어야지
 
점심시간이었다. 밖에서 “막내야!”라는 소리가 들린다. 청소하던 빗자루와 삽을 내려놓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내 이름을 부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뷔페 같은 기사식당이다. 큰 접시에 밥과 반찬을 퍼 먹는 시스템이다. 밥을 떠서 인력대기소 패밀리들과 합석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다지 고마운 일 없어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밥시간이라고, 이제 밥 먹으라고, 내 이름을 크게 불러준 진솔 형님에게 나는 말했다. “챙겨 주셔서 고마워요.”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에도 잘 챙겨 주세요.’ 진솔 형님이 말했다. “사람이 싸가지가 있어야지. 아까 네가 버스에서 나한테 자리 양보하려고 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제일 싫더라. 너는 안 그래서 좋다.”
 
‘싸가지’에 관한 최초의 첫인상은 나의 사소한 행동으로부터 비롯했다. 만약, 아침에 버스에서 빈자리가 나왔을 때 진솔 형님에게 “여기 자리 났어요. 여기에 앉으세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나는 필시 ‘싸가지 없는 놈’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때 진솔 형님은 사양했다. “너 앉어.” 결국 그 자리에 앉은 건 나였다. 말 한마디에 ‘싸가지’의 유무가 결정된다...
 
 
 
#막내
 
노가다판에서 나는 항상 막내다. 노가다꾼 중 20대는 희귀하다. 30대도 드물다. 40대도 젊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하신 분들이다. 막내 동생 혹은 막내 자식, 그게 이곳에서의 내 위치다.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을 형님, 사장님, 선생님 등으로 호칭하는 이유다. 작업 숙련도도 젬병인 나에게는 그들의 호의가 필요하다. 처음 가보는 공사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인력대기소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까지도 나를 홀대한다면 나는 완벽히 혼자가 된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다.
 
 
 
#진솔 형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30분 남았다. 스티로폼 판을 매트 삼아 땅바닥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웠다. 진솔 형님이 내게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어라 전화가 왔었네. 저번 주에 내가 마트 면접 봤거든. 이번 주부터 일하러 나오라네. 내가 옛날에는 장사했어. 유통업을 했어. 수산물, 돼지고기를 운반했어. 수산물은 후쿠시마 원전이 그렇게 되고 나서 망하고, 돼지고기는 구제역 날 때마다 지랄이라 힘들어서 망했어. 나는 군대 전역하고 21살부터 노가다를 시작했어. 친구랑 둘이서 인력소에 갔어. 근데 첫날부터 무슨 대전으로 우리를 데려가더라고. 헬스기구를 옮기라대. 어떤 거는 하나에 500kg이 넘어. 뒤지는 줄 알았지. 그리고 11만원 받았어. 10년도 지난 이야기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한 20만원쯤 되려나? 죽는 줄 알았어, 그때.”
 
옆에 있던 현수 형님이 자신의 이야기로 대답을 갈음했다.
 
 
 
#현수 형님
 
“나는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하, 이 담배. 이것도 한동안 끊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피웠어. 한번 몸이 나빠지니까 진짜 죽겠더라. 오늘도 아침에 소주 두 병 마시고 나왔잖아. 작년에 술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도. 반년 넘게 쉬었어. 집에만 있었어. 병원만 다녔어. 간에 문제가 생겼었거든. 진솔이 너도 알지만, 내가 원래 술을 많이 먹잖냐. 집에 있으면 내가 뭘 하겠어. 무슨 게임을 하지도 않고, 텔레비전도 안 좋아하고, 술밖에 더 있냐. 술만 먹었지. 그러다 몸에 이상이 생겼던겨.
 
작년 추석에 문제가 터졌어. 와이프한테 ‘네가 아들 데리고 친정이랑 시댁에 인사드리고 와라. 나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하고, 나는 그 며칠을 혼자 있었거든. 한 사나흘 혼자 있었나? 내가 집에 혼자 있으면 뭘 하겠냐. 술만 먹었지. 나는 있잖아, 술을 먹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 이 담배 생각도 안 나. 그냥 술만 먹고 싶어. 밥도 안 먹었어. 슈퍼에서 우유 큰 거 한 팩 사다 놓고, 소주에 우유만 먹었거든? 그렇게 하루에 10병 넘게 마시니까 몸이 못 버티더라. 진짜 죽다 살아났어. 진솔이 너도 알겠지만, 내가 옛날에 과일장사 하다가 망했잖냐. 그 이후로 진짜, 내가 죽지 못해서 산다. 내가, 진짜 말이 아니야.”
 
진솔 형님이 대답했다. “알지, 나도 사업하다가 망해봤으니까. 그래도 형님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아저씨들은 자꾸만 나를 가르치려 한다
 
공사판에서 마주치는 아저씨들은 나만 보면 자꾸만 가르치려 든다.
 
“남자는 기술을 배워야 돼. 그래야 평생 벌어먹고 살아. 요즘 말이야, 젊은 놈들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일들 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이게 아주 큰 문제라고. 요즘 봐봐, 실업률이 높다 뭐다 하는데, 공사판엔 사람이 없어. 가보면 힘든 일들은 다 외국놈들이 하고 있다고. 이러다가 10년 20년 지나면 공사판엔 외국놈들 천지일 걸? 요새 젊은 놈들 보고 있으면 내가 속이 터진다니까. 자네도 다른 생각 말고, 기술을 배워.”
 
 
 
#자네는 얼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현장소장이 돈다발을 들고 우리에게 왔다. “다들 고생했어요.” 5만원짜리 2장, 1만원짜리 2장을 한 사람 한 사람 나눠 줬다. 그러기를 다섯 번. 이번엔 내 차례가 됐다. 현장소장은 먼저 5만원 2장을 건넸다. “자네는 얼마쯤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나? 한번 본인 입으로 말해봐.” 나는 ‘이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현장소장은 만원 한 장을 내게 건네더니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이 중에서 너가 제일 편하게 일했으니까, 11만원만 받아.” 인력대기소 패밀리가 항변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똑같이 일했는데, 똑같이 받아야죠. 애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만원 한 장가지고.” 현장소장은 머쓱했는지 나머지 만원을 내게 건넸다. 그렇게 해서 12만원을 겨우 받았다.
 
집으로 가는 길, 진솔 형님이 말했다. “나한테 그랬으면, 진짜 반쯤 죽여 놨을 거야. 돈 몇 푼 가지고 그러면 안 되지, 사람이. 싸가지 없게. 진짜 내가 죽여버릴라다 참았다.”
 
현수 형님이 말했다. “예전에 어떤 형님도 너처럼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오히려 그 형님은 자기가 받은 일당에서 만원 한 장을 꺼내더니, 그 돈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현장소장한테 이렇게 말했어. ‘여기 만 원 한 장 더 드릴 테니까, 이거 가지고 자식새끼 과자나 사다 주쇼.’
 
김씨 아저씨가 말했다. “이렇게 여러 명이서 일하다 보면, 누구는 더 힘들게 일하고 누구는 덜 힘들게 일할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건 똑같잖아. 일하다 보면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도 서로 도울 건 돕고, 각자 맡은 일 하는 거지. 그런 게 팀워크 아니겠어?”
 
나는 생각했다. ‘덜 힘들게 일한 사람한테 돈을 덜 줄게 아니라, 힘들게 일한 사람들한테 돈을 더 줘야지. 내가 덜 받는다고 해서 힘들게 일한 사람들한테 추가적인 보상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내가 만원을 덜 받게 됐다면, 그 돈은 누구한테 돌아갔을까. 현장소장은 인건비 지출내역에 정확하게 기입했을까.’
 
 
 
#결산
일당 12만원
수수료 1.2만원
순익 10.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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