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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광 Feb 10. 2017

만선(滿船)

칼바람 불던 한겨울, 폐지줍는노인을 보고

*
노인이 청년에게 담배 하나만 빌리자며 말을 걸어왔을 때부터, 자신은 리어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손자가 이제 너만하겠다, 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노인은 해종일 골목을 헤집었다. 어귀마다 그는 허리를 숙였다. 그곳엔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쓰레기를 뒤적이고, 돈 될 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리어카에 싣고, 이것들을 고물상에 내다 파는 게, 노인의 일과다. 벌써 3년째다. 리어카 끌며 고물 줍는 일을 자신이 하게 될 줄, 노인은 몰랐다. 어쩌다 보니 인생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그만큼 행운이 노인을 따랐다. 폐지 줍는 사람이 뜸했다. 발길 닿는 데마다 고물들이 노인을 기다렸다. 그는 시작부터 공병을 주웠다. 쓰레기 옆으로 맥주병이 즐비했다. 눈대중으로도 10병이 넘었다. '한 병에 130원.' 노인은 셈했다. 맥주병을 조심스럽게 리어카 한구석에 모셨다. 다른 골목 어귀에도 고물이 풍년이었다. 몇 달치 신문이 꾸러미로 있었다. 묵직한 박스가 가지런했다. 매일 다니는 길이었지만 오늘처럼 고물이 많은 날은 없었다. 리어카가 만선을 이뤘다. "별일이네." 노인은 혼잣말했다. 오랜만의 성공이었다. 그는 실패에 익숙하다. 실패만 거듭하다가 결국 리어카를 끌게 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노인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한때는 잘나갔다. 괜찮은 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서 일했다. 어느날 외환위기를 맞았다. 회사가 사라졌다. 그때가 55살이었다. 그나마 모아둔 돈이 있었다. 사업을 시작했다. PC방을 차렸다. 잘되는 듯했다. 얼마 못가 망했다. 여기저기 PC방이 생긴 탓이다. 믿었던 친구한테도 사기를 당했다. 집마저 잃었다. 아내가 떠났다. 술로 지샜다. 소주병을 베고 잤다. 안되겠다 싶었다. 일자리를 구했다.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밤낮으로 일했다. 10년을 일했지만 쫓겨났다. 나이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거울 앞에 선 어느날 자신은 어느덧 노인이었다. 그는 모아둔 것도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식들도 연락이 없었다. 노인은 죽지 못해 살았다. 폐지라도 주웠다.
 
요즘엔 그마저도 힘들다. 고물값은 해마다 떨어졌다. 폐지값은 특히 심했다. 노인은 고물상으로부터, 고물상은 제지압축업체로부터, 압축업체는 제지업체로부터 폐지값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사이 제지업체만 영업이익이 늘었다는 것을, 노인은 몰랐다. 폐지라도 줍겠다고 나선 사람이 전국에 200만명이라는 사실을, 노인은 길거리에서 가늠할 뿐이었다.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고 고물상들이 도심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을, 노인은 먼걸음으로만 느꼈다.
 
노년의 가난은 괴로웠다. 상실은 공포였다. 노인은 더 잃을 게 없었다. 이제 그는 세상일에 냉담하다. 메르스는 별일 아니었다. IS가 프랑스를 테러한 것도 남일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한들 노인은 무심했다. 딱 한 번, 바다가 핏덩이 같은 것들을 삼켰을 때, 차라리 그게 자신이었으면, 하며 서글펐다. 그 밖의 숱한 사건사고들은 모두가 노인에게는 박스 하나만 못한 무게였다.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이런 노인이었다.
 
리어카를 만선으로 채운 것은 별일이었다. 이를 도둑맞은 것은 더 별일이었다. 정황은 어이없었다. 화장실 다녀온 사이, 리어카가 사라졌다. 그뿐이었다. 담배는 몇 대째 바람에 스러졌다. 노인은 처음부터 담배 피울 생각이 없던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더 잃어야 하나, 하며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담배만 내어 줄 뿐 말이 없었다.
 


 
***
리어카 끌고 다니며 폐지를 모으시는 어느 할아버지와 담배를 같이 피운 적이 있습니다.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분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 금방 헤어졌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하루 종일 떠올랐습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주변에 심심찮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분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날 밤, 비록 소극적인 방법이었지만, 저는 그분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자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만선>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번 글은 그 기사들을 소설처럼 추레하게 엮은 결과물입니다. 등장인물인 노인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피상적인 것은 그분들과의 교감이 제게 여전히 부족한 탓입니다.
 
서툴고 얼기설기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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