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 홈페이지를 확인하세요!
군인가족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관사에서 사는 줄 안다. 나 역시도 철원으로 가면 당연히 관사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동네 관사 대기는 생각보다 길었고, 서울 집은 전세 기간이 만료되면서 당장 가전, 가구를 둘 곳이 없었다. 짐 보관 이사를 해야 할지, 철원에 월세를 구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관사 대기하는 동안 살 월세집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 무작정 철원으로 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부동산은 대부분 닫혀있었고, 열려있는 부동산에서도 자기들은 땅을 주로 취급하며 아파트/빌라 월세 매물은 잘 없다고 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집은 어떻게 구하냐고 되물었더니, 여기는 시골이라서 철원 군청 홈페이지로 확인하고 주로 부동산 없이 계약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은 막국수만 먹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내대막국수, 정말 맛있었다!)
평생을 집은 부동산에서 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나는, 그날로부터 철원군청 홈페이지를 매일매일 확인했다. 매매를 포함한 꽤 많은 매물들이 홈페이지에 오더라.
그렇게 일주일 내내 매물을 알아보고 돌아온 주말 철원으로 갔다. 그날 꽤 여러 군데 집을 봤다. 임시로 살 집이기 때문에 최대한 저렴하길 바랬고, 또 너무 낡지는 않았으면 했다.
그간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도시가스가 정말 도시에만 있다는 처음 알았다. LPG 가스통, 기름보일러를 본 것도 충격이었지만, 어떤 집은 녹물이 나오고, 어떤 집은 담배냄새가 진동을 했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그날 마지막으로 본 집이 지금 우리 집이다. 보증금 2000에 월세 30이라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아름다운 가격!
우리 집은 94년도에 지어진 빌라다. 그래서 싱크대나 화장실은 많이 낡았지만, 주인분께서 도배, 장판, 전등, 보일러, 화장실 변기, 세면대는 리모델링을 해두셔서 제법 깔끔했다. 건물 자체도 그 당시에는 꽤나 고급 콘셉트로 지은 것 같은 게, 현관문도 학과 소나무가 그려진 철문이고, 싱크대 상부장에 라디오도 붙어있다. 가장 재미있는 건 모든 방문이 아치형인데, 그 시절엔 옥색 인테리어와 함께 유행했던 거라고!
무엇보다 집이 넓고(32평) 정남향이라서 채광이 매우 좋다. 그리고 농촌마을에 위치하고 있어 앞뒤로 탁 트여있고 산이 보이는데, 나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이라니!
또, 4층 건물에 4층이라 옥상도 우리가 쓸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택배 시킬 때 항상 죄송하지만.)
집을 본 날 바로 계약을 했고, 입주 청소하시는 분은 묵은 때가 너무 많다고 힘들어하셨지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베란다에서 물이 새는 거 말고는 좋은 점 밖에 없는 우리 집!
관사는 아직 대기 중이고, 제법 신축관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대로 이사를 할 예정이지만, 이 집을 떠날 때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남편 부대 사람들도 매번 철원에서 월세를 어떻게 구했냐고 물어본다고.
커버 사진과 아래 사진은 집 보기 전에 할아버지 집주인분이 보내주셨던 다소 암울한 사진. 창문을 모두 열고 찍으셨더라면, 집이 훨씬 빨리 나갔을 텐데! 이 집을 떠날 때 말씀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