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만 보면 눈물이 나는 이유.
지금 횟집이 자리를 잡기 전, 엄마는 작은 마사지샵을 운영했다. 아빠와 헤어지고 어린 딸과 동생을 키우며 뭐라도 먹고살아야 했기에. 온전한 기억 하나 제대로 서있기 힘들 만큼 가팔랐던 때라 그런지 선명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우리 집은 참 어려웠던 것 같다. 쌀이 없어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꼬깃꼬깃 모아둔 돈으로 쌀독을 채워주시곤 했는데 그게 엄마한테는 한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엄마와 옛이야기를 나눌 때, 그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의 목소리가 푹 하고 잠긴다.
아무튼 그날도 엄마는 변변치 않게 밥을 챙겨 먹고 샵으로 나갔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배고플까 걱정이 돼서 냉장고에 남아있던 계란을 삶았다. 야무지게 소금까지 챙겨서 반찬통에 담아 한 십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 샵이라고 해봤자 제대로 된 간판도, 시설도 없었다. 침대 하나랑 마사지 기계 한 두어 개. 냉담하고 초라한 그곳에 내가 오래 머무는 걸 엄마는 영 싫어했다. 시멘트 벽으로 둘러 쌓여 손대지 않아도 한기가 느껴지던 그 공간의 설움을 몰랐던 어린 나에게 그런 엄마의 마음은 내 사정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 해가 져야 돌아오는 엄마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게 좋아서, 엄마 밥을 챙겨줬다는 게 뿌듯해서 올라갈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다. 집 앞 슈퍼에 잠깐 나가려는데 옆집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물었다. 너네 엄마 이제 괜찮으셔? 나는 답했다. 뭐가? 친구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고, 그걸 듣고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날의 가슴 통증이 기억날 정도로 억장이 무너졌다.
아니 너네 엄마가 점심에 뭐 삶은 계란을 드셨나 봐. 그거 드시고 체하셔 가지고 우리 집에서 손 따고 가셨어. 엄청 아파 보이셨는데 집에 아직 안 오셨나 보네.
엄마는 은근히 몸이 약해 어디 한 군데 아프기라도 하면 얼굴이 시퍼레진다. 딸이 고사리 손으로 삶아준 계란을 먹고 탈이 났단 이야기를 하기가 미안해서, 이제 곁에 기댈 데라곤 엄마뿐인 딸에게 아프다고 말하는 게 가여워서 맘 편히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샵으로 돌아갔을 엄마의 뒷모습이 선연하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줄 알았다. 지금은 쌀 걱정 없이도 살고, 여행도 갈 만큼의 여유가 생겼으니 아련한 마음이야 남겠지만 아리지는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렸던 나보다 어렸던 엄마의 나이와 더 가까워지니 굳은살이 배기는커녕 깊숙이 생살만 더 파인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설움이 밀려온다.
엄마, 어째 참았노. 왜 참았노 왜.
너무 어려 안아주지 못했던 그 뒷모습을 폭 감싸 안고 엉엉 울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