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를 대신할 인삿말을 찾았다.
친구들과 자주 행복하자 는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럴때면 ‘아 지금 우리는 그닥 행복하지 않구나’ 하는 현실이 훅 몰아쳐 괜히 더 착잡해졌다. 실제로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재 행복을 느끼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갑부가 은행 가서 대출 알아보겠나.
그렇다면 ‘행복하자’ 를 대체할 수 있는 인사는 없을까? 고민하다 ‘대충 살자’ 가 떠올랐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처럼 대충 살자.
힘내! 화이팅! 치얼업! 무조건 더하고 싸우고 업시키라고만 말했던 세상에서 갑자기 대충 하라니 힘이 쭉 빠지는데 그게 결코 실없이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청개구리마냥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뭐 이정도까지 할 힘은 있지! 암 그렇고말고’ 하고 신비한 기운이 솟아난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친구 하나는 “병원 가서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말야, 간호사가 ‘엉덩이에 힘 빼세요.’ 하면 엉덩이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다구”라고 말했다. 쓰고보니 이 말은 그다지 적절한 예시같지는 않다.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p.44
어제 본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에서 말하는 메시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Doing nothing often leads to the very best of something.”
“아무 것도 안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돼.”
돌이켜보니 나도 좀 괜찮은 아이디어나 글감들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앞으로 후딱 까뒤집고 샴푸에 물을 묻혀 풍성하게 거품을 만들어내 두피에 비벼낼 때 퐁퐁하고 솟아났다. 때론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 때, 멍하니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볼 때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처럼 생각의 문을 열리기도 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한다는 강박은 우리를 더욱 속박할 뿐 해방시켜주지 않더라. 게다가 대충 살자고 일부러 되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필시 대충 막 살지 않을 것이다. (막 사는 것과 대충 사는 건 확실히 차이가 있다. 대충 사는 게 아파도 약을 챙겨 먹지 않는 삶이라면 막 사는 건 아프다고 마약을 하는 삶이랄까.)
오히려 열심히 잘 해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물어 버린 마음에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내리는 단비 정도로 내려주겠지. 구태여 행복을 찾아 헤맬 필요 없다. 인생에 커다란 주삿바늘이 콕 하고 들어와도 아프지 않게 간호사 선생님이 엉덩이를 톡톡 쳐줄 필요가 없게 힘을 추욱 빼고 대충 살아보자.
p.s.) 김동완은 정말 여러모로 나의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