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가능한 인력'이란 불안을 품고 사는 나에게

무슨 일이든 시간이 들겠지

by 문연이

세 달 전 입사했던 인턴이 퇴근 전 무거운 얼굴로 고민이 있다며 10분만 내어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10분 만에 끝날 이야기 같진 않은 느낌에 이런 얘긴 한 3시쯤 해주지 싶었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하며 그가 있는 쪽으로 자세를 틀었다.


그 : 프로님은 왜 여기 남으시기로 한 거예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져요."


이건 소름 돋게도 몇 달 전, 내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고민이었다. 더불어 오랜 생각 끝에 나름 마음에 드는 답을 찾은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 앞에서 울먹이고 있는 이 어린양의 마음이 이해가 갔고, 다행스럽게도 정신 사납지 않게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을 들려줄 수 있었다.


나 : 이거 저도 똑같이 했던 고민이에요. 문자 보내고, 카톡 보내고, 메일 보내고, 인터뷰하고, 글 쓰고, 영상 만들고. 이 일을 반복하다 보니까 이건 내가 없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은 거예요.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지고. 그래서 회사를 둘러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치면 모든 일이 다 대체 가능한 일인 거예요. 심지어 대통령도 5년마다 바뀌는데 과연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정말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둘러보니까 정말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그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한 사람이더라고요.



20160725-IMG_5316.jpg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들 한다. (사진은 그랜드캐년)


그 : 전 자꾸 저랑 같이 들어온 인턴 분들이랑 비교가 돼요. 그분들은 저보다 더 어려운 일을 잘 해내시는 것 같은데 전 아닌 것 같거든요. 프로님도 저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일은 더 잘하시니까...


나 : 저는 프로님보다 2년 더 일찍 시작했잖아요. 저도 자신감이 가득 찬 사람도 아니고, 또 마케팅 전공이 아니라서 그런 생각 되게 많이 했어요. 열등감을 인간으로 표현하면 그게 바로 나다!! 할 정도로.


저 사람은 나보다 숫자를 더 잘 다루고, 저 사람은 나보다 디자인을 더 잘하고, 저 사람은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저보다 잘나 보이는 거예요. 심지어 목줄 차고 산책 나온 개를 보면서도 쟤는 나보다 팔자가 더 좋네 했다니까요. 그렇게 계속 비교하니까 끝이 없었어요.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어딜 가도 있고, 그럼 나는 당연히 계속 못난 사람이 되고. 그렇게 비교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데 저 사람도 나를 보면서 자기가 나보다 못났다고 비교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거예요. 비교는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거니까. 그 생각이 딱 드니까 '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냥 난데.' 하고 마인드 컨트롤이 되기 시작했어요.


물론 아직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쑥불쑥 비교하게 되고, 열등감이 생기기도 해요. 다행인 건 그러다 결론은 '그래도 나는 나다!' 하고 덜 부정적이 어지더라고요. 세상에 다 잘하는 사람은 없대요. 저도 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것저것 배워봤는데 심리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크게 나아지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내 분야에서 열심히 꾸준히 최선을 다하자 싶었어요. 저는 일단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책 열심히 읽고, 글 꾸준히 쓰자 는 게 다짐이었어요. 여기서 핵심은 꾸준히. 그리고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한테 안 부끄럽게. 성의 없어 보이지 않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무조건 발전하게 되어 있으니까 비교는 과거의 나랑만 하는 거죠. 프로님도 분명 프로님만의 무기가 있을 거예요. 그게 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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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 그러고 보니까 아까 한 달 전에 프로님한테 드렸던 원고랑 어제 드린 원고랑 비교해봤는데 빨간 펜 표시가 훨씬 줄었더라고요."


*글 교정할 때 늘 빨간 펜으로 고칠 부분을 표시해서 드리곤 했다.


나 : 그렇죠! 맞아! 꾸준히 하면 되더라고요.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이상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잘하게 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프로님처럼 한창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대표님이랑 식사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기본적인 걸 습득하지 못하면 가르칠 수도, 지시할 수도 없다."


저는 프로님을 만나고 그 말 뜻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일을 마스터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 더 디벨롭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도 있거든요. 나중에 프로님 부사수 들어와서 프로님이 일 알려주면 그 부사수도 그럴걸요? '프로님, 일 진짜 잘하시네요!'


이 일이 나한테 안 맞다는 확신이 들어서 포기하는 거면 결단이 빠른 거죠. 지혜로운 거예요. 빨리 다른 길 찾아야죠. 그런데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 것 같아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아서 포기하는 거면 조금만 더 꾸준히 해보면 좋겠어요.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만. 프로님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하다 보면 지금 하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거든요.


그 : 네 좀 더 고민해볼게요."




내가 계획했던 것 유난히 뜨거웠던 너
뭐 하나라도 내 걸로 만들기 어려워
또 시간이 들겠지
또 시간이 들겠지

로꼬 - 시간이 들겠지


일이 맞지 않았던 건지,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았던 건지 그는 결국 떠났지만 이날의 대화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10분만 이야기하자고 해놓고 한 시간이 넘게 떠들었던 시간의 무게 탓도 있겠지만 사실 이 얘기는 그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다시 되뇐 다짐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같은 마케팅 업무지만 타깃도, 방법도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기 때문에 최근 한 두 달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일을 하기 적합한 사람일까?'하는 걱정들은 어찌나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지. 그때 로꼬의 시간이 들겠지 라는 노래가 나왔고, 이 날의 대화도 다시 떠올랐다.


그래 시간이 들겠지.

이 일을 잘 해내는 데도 시간이 들 테니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나아지겠지.


다행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다짐만은 굳건히 남아있어서.







10월 문토 <거기서부터 쓰기>

두 번째 모임의 주제는 요즘의 BGM. 최근 가장 즐겨 들었던 BGM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는 날이었다. 팀을 옮기는 시기와 로꼬의 '시간이 들겠지'라는 곡이 나온 시기가 마침 꽤 비슷했다. 한창 혼란스러운 시기,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던 노랫말이었기에 언젠가 한 번 정리해서 쓰고 싶었는데 이 날이 기회였다.


모임에선 각자 글을 쓴 후,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 읽는 시간을 가진다. 마침 그 날, 퇴사를 고민하고 계신 분이 계셨는데 회사에 나 같은 사수가 있었다면 퇴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감상을 말씀해주셨다.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 잠시 가슴이 찡했다. 마치 미생의 한 장면 같았다는 감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비록 인사도 없이 떠났지만 그건 아마 내게 미안해서일 것이다. 이 날의 대화가 그의 고민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먼저 10분을 내어달라고 말해주어 고맙다. 덕분에 나는 다시 다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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