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글을 쓴다는 것

by 문연이

"엄마, 내 상 받았다 상."


학창 시절 받은 상장 대부분은 글쓰기 상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 교육, 특히나 국어 교육에 매우 엄했다. 7살 무렵 티몬과 품바를 보며 상큼하게 시작했던 일요일 아침의 끝에는 늘 독후감 (강요)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는 아직 품바가 부르던 노래의 여운이 남아있었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억지로 책상에 앉게 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했다. 무서워서 싫다는 소리는 못 하고, 하지만 그 싫음은 여전히 간직한 채 화가 나 뻘게진 눈으로 책을 펼쳤는데 막상 책을 펼치면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고 느낀 점을 썼다.


그런 조기 교육 덕분일까. 초등학생이 된 후 받아쓰기 시험에서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학교 신문에는 늘 내가 쓴 글이 올라왔고, 전국이나 도에서 하는 글쓰기 대회에도 매번 학교 대표로 나가곤 했다.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보여지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일이 즐거웠다.


그런데 잘못 컸다. 대학생 때 레포트를 쓴 것을 마지막으로 제대로 각 잡고 긴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SNS에 짧은 글을 올리는 건 글이라기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배설에 가까웠고, 회사에서 쓰는 글은 내 생각이라기보다 정보 전달에 가까웠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글쓰기라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글을 쓰지 않자 생각이 굳어지고, 어휘력이 떨어지고, 문장력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손에 책을 들었다. 좋은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니 손이 근질근질했다. 한 손은 계속해서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과 생각을 흡수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했고, 또 다른 한 손은 직접 글을 써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다. 다시 펜을 쥐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라는 취미에 시동을 걸었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검색하고, 배우고 싶은 작가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글쓰기 모임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부터 쓰기.' 격주 토요일마다 모여 글을 쓰는 모임이었다. 모일 때마다 무슨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게 모임의 호스트가 글감을 던져주었다. 호스트는 평소 동경하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고, 자신을 인수분해하면 ‘술’이 나올 만큼 애주가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여기다! 단번에 참여를 결정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면 더 자극을 얻어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3개월 할부라는 마법을 걸었다.


때는 2018년의 여름, '2018년 여름'은 고유명사로 만들어져야 할 만큼 뜨거웠다. 아니 뜨거운 게 아니라 버닝. 타는 거라고 불러야 맞겠다. 불타는 토요일, 나는 분당에서 합정까지 지옥 불을 걷는 심정으로 모임 장소에 갔다. 날씨만큼이나 어색함이 불타는 첫 모임. 15명 정도가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아 펜과 노트, 노트북을 꺼내놓고 쭈뼛쭈뼛 있었다. 첫 모임이다 보니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이때 나이와 직업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모종의 규칙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할 때 나이와 직업이 아니면 별달리 할 말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래서 우리는 이름과 더불어 어디에 살고 왜 모임을 신청했는지 정도의 정보를 밝힌 후 글쓰기에 돌입했다.


호스트가 먼저 그날 모임의 주제와 주제에 관련된 책의 구절을 읽었다. 이후 2시간 동안 각자의 글쓰기에 집중했다. 혼자서 쓸 때는 글을 쓰다가도 휴대폰을 보거나 멍 때리거나 잡생각을 하느라 1시간도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는데 단체로 모여서 글을 쓰고 있으니 딴짓하기가 영 민망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쓰는 옆 사람에게 자극을 얻어 나도 열심히 글만 쓰게 되었다.


2시간의 글쓰기 시간이 끝나고 자기소개 시간처럼 돌아가며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이 모임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때마다 다들 이 부분에서 ‘엑’소리를 낸다.


'엑 내가 쓴 글을 보여준다고?'


그렇다. 나도 첫 시간에는 글을 돌아가며 읽는 것인 줄 모르고 다행히 속으로 엑 소리를 냈는데 이 시간이 그렇게 유익하고 또 유쾌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함께 글을 쓰면 얻게 되는 것도 엑 소리가 날 만큼 많다.


일단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 모임의 또 다른 규칙은 바로 칭찬하되 평가하지 않는 것. 한 사람이 글을 읽고 나면 멤버들이 감상을 밝히곤 하는데 이때 비평이나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모임은 글쓰기 ‘수업’이 아닌 글쓰기라는 취미를 함께 공유하는 모임일 뿐이므로 각자의 글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 문장이 좋았고, 이 부분이 와닿았어요.” 하며 내 글을 갓 태어난 아기의 눈 코 입을 칭찬하듯 부분부분 뜯어서 칭찬해줄 뿐이다. 이렇게 부둥부둥해주니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모임에서는 글을 쓰는 것만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 가서 남, 그러니까 친구나 가족이 아닌 느슨하게 얽힌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은 적이 있었나 반성하게 될 정도로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도 재미있게. 집중하게 되면 너무 신기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칭찬할 것이 생긴다.


우유로 시작해 시리얼로 마무리되는 글은 정신없지만 그 정신 없는 글을 읽는 사람이 워낙 흥겹게 읽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고 마치 그 의식의 흐름을 같이 걸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럼 나는 “제가 보낸 하루도 아닌데 제가 그 하루를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요.” 하고 감상평을 들려준다. 편의점에서 새로운 라면 먹기에 도전했던 일을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콜럼버스라도 된 것처럼 비장하게 표현한 글에는 “작은 일을 크게 말하고, 큰일을 작게 말하는 게 글을 재밌게 만드는 요소라고 들었는데 이 글이 대표적인 예네요.” 하고 칭찬할 수 있다.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를 뿐, 사실 모임에 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건 결국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내 맞은편에 앉은 멤버 한 분이 ‘길을 잃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런데 그 친구도 사실 헤매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우리의 길이 아닐까.’라는 내용의 글을 읽어주셨다. 그건 내 이야기였고, 또 함께 듣고 있던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였다. 쇼미더머니처럼 공감 버튼이 우리 앞에 달려있었다면 ALL 공감 표를 받았을 만큼 모두의 이야기였던 글. 그런 글은 매번 모임마다 등장한다. 그때마다 우리 삶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안에 담긴 본질은 비슷하구나 하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니 어느 하나 못난 글이 없는 거다. 어느 하나 잘못된 글이 없는 거다. 모든 글이 다 우리 사는 이야기고, 그래서 다 소중하다. 이 모임을 9개월 정도 하다 보니 이 세계가 글에서 사람으로 확장되었다. 어느 하나 못난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예쁜 이야기와 예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글과 사람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을 글로 알게 되는 경험은 놀라웠다. 나이와 직업을 모르니 멤버들이 쓴 글을 통해 서로를 유추할 뿐이었다. 함께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각자가 쓴 글로 서로를 기억했다. 나는 울릉도, 누군가는 다람쥐, 누군가는 아이클라우드, 또 누군가는 BTS, 누군가는 우유. 이름보다 더 뚜렷하게, 자기소개서보다 더 솔직하게, 직업보다 더 깊이 상대를 이해하고,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도 모르는 내밀한 부분을 공유했다.


그리하여 함께 글을 쓰는 건 내게는 치유였다. 아프다고 말하며 오는 사람도, 치료해주겠다고 오는 사람도 없었는데 사람들은 속에 있던 감정을 토해내듯 글로 썼다. 모임에 온 사람들은 화를 내며 글을 읽기도 했고, 울면서 읽기도 했고, 그리워하면서, 반성하면서 읽기도 했다. 그리고 글을 들은 사람들은 등을 토닥여주듯 공감하고 응원하고 위로의 감상을 남겼다. 그래서 모임이 끝날 때 우리 얼굴에는 늘 미소가 걸려있었다. 자기 주장하기 바쁜, 내 주장이 안 먹히면 비난하기 급급한 이 세상에서 이처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책을 쓴다는 핑계로 이 모임을 쉬었더니 이 시간이 그립다. 다시 돌아가야겠다.



keyword
이전 17화나는 슬플 때 콧노래를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