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플 때 콧노래를 불러

흥얼흥얼 휠릴리

by 문연이

어제 코인 노래방에 가서 어제 실연당한 사람처럼 애절하게 <행복하지 말아요>를 불렀다. 오늘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던 찰나, 그 순간이 번뜩하고 떠올라 미치도록 후회가 되었다. 어제 부른 그 노래가 스스로에게 내린 저주 같아서.


엿같은 하루였다. 맞지 않은 옷을 껴입은 것처럼 하루 종일 답답했다. 롤러코스터를 세 번 연달아 탄 듯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홉 시 반 마지막 필라테스 수업이라도 꾸역꾸역 들어가려고 했지만 일이 끝나지 않았다. 저녁을 괜히 먹었구나 싶었다. 그마저도 20분 만에 먹고 온 건데 저녁 먹은 시간까지 탓해야 하는 사실이 너무 팍팍해서 울적했다. 이대로 내 소중한 하루를 불행하게 끝내야 하나. 그럴 수 없었다.

별생각 없이 콧노래를 불러보았다.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하루 중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시간답게 내 마음대로 흥얼거렸다.


오 조금 신나는데?



문연이_20190326_220803_2.jpg 거리에는 달과 나와 택시뿐


삘을 받은 나는 이윽고 엉덩이를 씰룩거려봤다. 어차피 10시가 넘었고 길거리에는 도로변을 쌩쌩 내달리는 차 말곤 사람도 없었다. 이어폰을 꽂은 것도 아니면서 내가 내는 콧소리에 맞춰 몸을 씰룩거리고 손가락을 사방으로 찔러봤다.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대책 없는 낙관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낙관을 강요하는 행태에 분노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랍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우리의 오늘은 누군가가 꿈꿔왔을 하루일 수도 있어요~~' 따위의 억지 희망 샘솟기 명언 같은 것 말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중력도 모자라 야근과 월세 관리비의 무게 때문에 입꼬리가 한없이 아래로 쳐지기만 하는데 어떻게 얼굴 근육을 억지로 깨워 웃으란 말인가! 또 다른 폭력이다.

콧노래는 달랐다. 웃을 필요도 없다. 중력과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잎끝 근육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고 구태여 신나는 노래를 흥얼거릴 필요도 없다. 그저 입을 다문채로 구슬프게 불러도 그만이다. 떠난 님을 그리는 아리랑 가락처럼 애달픈 콧노래도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상황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혀서, 무의식 중에 흥얼거린 리듬이 좋아서 노래방에서 트로트 버전을 선택한 것처럼 흥겨운 가락으로 변주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몸도 내 가락에 맞춰 얼쑤절쑤 씰룩씰룩거린다. 한 톨의 억지 없이 내 안의 기류를 바꾸는 방법인 셈이다.

택시를 기다리는 1분 정도,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들썩거렸더니 찝찝했던 심신이 상쾌해졌다. 불행 한가운데서 웃음을 만들어낸 자신이 기특하기도 했고, 어떻게든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웃었고 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곧장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기고 머리 속도 게워내었다. 이만하면 수고했다. 더 나아질 거야. 하는 희망찬 기운이 습기처럼 피어올라 얼굴에 송골송골 맺혔다.

앞으로도 기분이 엿같을 때는 억지로라도 콧노래를 흥얼거려야겠다. 음악에 반응하는 오르골 같은 내 몸은 어쩔 수 없이 씰룩거리겠고, 그러다 보면 별일도 별일 아닌 듯이 느껴져 곧 풉 하고 웃고 말 테니. 오늘의 삘을 잊지 않아야지.

keyword
이전 16화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