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한 달짜리라면?

잘 사는 게 무엇일까 고민될 때 던진 질문

by 문연이

책을 읽다가 한 문장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이 좋은 하루는 언젠가 다시 올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을 덜 살고 남겨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오늘이 또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삶이 한 달짜리 계절이어도 그런 생각을 할까?"

_김신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삶이 만약 한 달짜리라면 나는 뭘 할까. 눈 앞에 펼쳐진 창밖 고가도로 위를 쌩하고 지나치는 차들을 보며 저속 비행하는 새처럼 한 달짜리 내 인생을 관망해봤다.


내게 딱 한 달의 자유시간이 있다면 포르투갈로, 치앙마이로, 스웨덴으로, 포틀랜드로 떠날 테야! 하던 지난날(그래 봤자 어제)의 다짐이 무색하게 막상 남은 시간이 한 달밖에 없다고 하니 그 시간을 여행으로 다 채워버리면 안 되겠다 싶었다.


2주 정도, 그러니까 주어진 시간의 절반은 가족들이랑 천국 같은 자연이 펼쳐진 곳으로 떠나서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춰야지. 곧 끝날 시간을 슬퍼만 하기보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물보다 진한 인연으로 엮여 행복했다고 웃으면서 말해줘야지. 문상신과는 술만 마시면 하는 얘기, 우리가 어릴 때 누가 더 엄마 속을 썩였는지 이제 그 시시비비를 완벽하게 가려내야지. 경주와 부산에 가서 옛날에 살았던 동네도 둘러봐야겠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학교에도 다녀와야지. 일주일이 부족하겠다.


이제 2주일이 남았다. 그중 일주일은 지금껏 살아온 시간의 절반이 넘는 또는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밤을 지새워야겠다. 함께 다녀온 여행지로 한 번 더 떠나 그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못다 했던 말들을 나누고, 지영이가 해주는 김치찜도 먹고, 김동우가 구워주는 삼겹살도 먹고, 셀 수 없이 자주 건배를 하고, 캄캄해진 바닷가에 누워 반짝거리는 별을 보며 다음 생에도 만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야지.


남은 일주일은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영원으로 간직할 수 있게, 내가 그리울 때나 내 얼굴이 흐릿해졌을 때나 같이 있던 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어김없이 많은 사진들과 영상들을 남겼을 테니 자는 시간을 아끼고 아껴 보기 좋게 기록해두어야겠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생각만 해도 울컥한다. 갑자기 오래 살고 싶어 졌다.


이렇게 삶에 제한 시간이 주어지니 그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질문, '잘 사는 건 뭘까?'에 대한 답도 윤곽을 드러냈다. 언젠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장면은 울릉도 친구들과 부둣가에 둘러앉아 캄캄한 밤바다를 곁에 두고 치킨과 맥주를 나눠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었던 어느 여름밤의 기억이었다. 그날 피부에 닿았던 바람과 바다 냄새, 서로를 바라봤던 우리의 표정과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오래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 안의 세포처럼 살아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내가 잘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있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박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시간에 감사하는 것,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기록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자존감을 키우고, 가끔 일상적이고 소박한 순간을 그립게 해 줄 여행을 떠나는 것. 별을 보고, 바다를 만지고, 지는 노을 속 붉어진 길 속을 자전거로 가로지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걸치며 도입부부터 설레게 하는 음악을 듣고 사랑을 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게 어울리는 '잘 사는 방법'이었다.


집중하기로 했다. 부지런하게 떠나겠지만 내 일상을 둘러싼, 굳이 일어날 필요도 없이 앉은자리에서도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 있는 소박한 순간에 집중하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기록하는 일에 열심이기로.


바다가 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고 속초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고,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면 달래된장 파스타 가게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고, 술이 당기는 날에는 홈플러스 와인 코너에 가서 고스트파인 진판델과 스모크 치즈를 집어 들고 오기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자주 편지를 쓰기로.


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팝 하고 터지는 팝콘이 되면 언제쯤 끝날지 모를 내 인생이란 영화가 더 즐거워지리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한 달짜리 삶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물어본다.


만약 당신의 삶이 한 달짜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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