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본토와 끊어져 있는 오지(奧地)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를 떠나 다음 여행지는 두브로브니크(Dubrovnik)다.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두브로브니크를 지도로 보면,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떨어져 있다.
중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해안 마을인 네움(Neum)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지형은 과거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지배하던 시기,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는 라구사 공화국이라는 독립된 도시 국가였다.
라구사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택했고, 그 결과로 네움 지역은 보스니아의 영토로 설정되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형성되고, 해체되고, 각국이 독립하면서 네움은 그대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땅으로 남았다.
결국 크로아티아의 본토와 두브로브니크는 국경으로 단절되었고, 본토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기 위해서는 잠시 보스니아 땅을 지나야 만 했다.
하지만 2022년, 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펠레샤츠 대교(Pelješac Bridge)가 개통되면서, 더 이상 국경을 넘지 않고도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두브로브니크로 바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브로브니크는 여전히 “오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기차도 없고, 공항도 멀고,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착한 숙소는 성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구시가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두브로브니크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아마도 사진이나 방송 등 영상들을 통해 은연중에 많이 접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평소 여행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느낌은 어쩐지 아쉽다.
여행지의 생경한 풍경에서 오는 설렘과 호기심이 미리 본 이미지들로 인해 반감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여행을 떠날 때는 숙소나 교통편 같은 최소한의 정보만 얻고서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며 알아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 흥미롭고,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구시가지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성벽 밖으로 나오자, 바닷바람과 함께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비록 겨울이라 흐리고 바람이 찼지만, 그런 날씨 덕분에 오히려 바다의 차가운 정취가 더 깊게 다가왔다.
다시 성벽 안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걸었다.
지도를 보기보다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다.
성벽 안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구조도 복잡하지 않았다
다른 유럽 도시의 구시가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성당이 중심이고 그 앞에 광장이 있으며 주변으로 건물들이 밀집된 전형적인 구조였다.
특별한 듯 평범하고, 평범한 듯 특별한 두브로브니크만의 매력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 숙소로 돌아왔다.
발코니에 나가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과 성벽, 그 너머의 바다는 장관이었다.
자다르(Zadar)에서 보았던 일몰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날 밤, 동유럽 여행 중 가장 비싼 저녁 식사를 와인과 함께 즐겼다.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조용하고 가볍게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