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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벽투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성벽투어

by 머슴농부


아침에 눈을 뜨니 회색빛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간간이 부슬비가 흩뿌렸지만, 본격적으로 내릴 기세는 아니었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성벽투어를 미루기에는 아쉬운 날씨였다.

우산을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성벽투어는 미리 준비해 둔 두브로브니크 패스로 입장이 가능했다. 이 패스 하나면 성벽은 물론 몇몇 박물관과 미술관도 함께 둘러볼 수 있고, 기간 내 시내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여행자에게는 꽤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성벽에는 세 곳의 출입구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메인 입구는 필레 문(Pile Gate) 바로 옆에 있다.


필레 문에 도착하니, 중세 도시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는 오노플라오 분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16각면으로 조각된 이 분수는 오랜 세월 동안 두브로브니크의 생명줄이자 만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분수 너머로 고개를 돌리니 성벽투어 입구와 티켓을 확인하는 직원이 보였다.


패스를 보여주고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 성벽 위로 발을 디뎠다.


성벽투어는 반시계 방향으로 도시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다시 필레 문으로 나오게 된다.


비는 잦아들었고, 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오히려 걷기에는 더 좋은 날씨였다.


성벽 위를 따라 걷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구시가지가 아드리아 해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두브로브니크만의 고유한 색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 뒤에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은 이 도시를 포위하고 집중 포격을 가해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지금은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대부분 복원되었지만, 성벽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복원된 벽 너머로 어렴풋이 전쟁의 비극이 스며든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지만, 그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성벽 자체도 인상 깊었다.


총길이 약 1.94km, 높이는 25m에 달하며, 두께는 바다 쪽이 1.5~5m, 육지 쪽은 최대 6m까지 이른다.


원래 모습은 여러 전쟁과 지진을 거치며 수차례 개축된 결과였다.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위협을 견뎌낸 방어 시설이 지금은 평화로운 산책로가 되어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왕좌의 게임 드라마 속 킹스랜딩의 실제 촬영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겨울의 두브로브니크는 고요하였다.

성수기의 북적임 대신 잔잔한 숨결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만난 한 한국 여행자는 매년 세르비아에서 한 달씩 지내며 이번이 세 번째 두브로브니크 방문이라고 했다.

“여름엔 너무 붐벼요. 겨울이 훨씬 좋아요.”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성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약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뙤약볕도, 눈부신 햇살도 없었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오히려 걷기에 편했고, 도시의 붉은 지붕은 더욱 짙은 색채로 다가왔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처음 보았던 그 감동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곳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나는 빨간 지붕의 파노라마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동안 빨간 지붕의 모습은 체코의 프라하에서부터 자주 그리고 많이 보았기에 빨간 지붕에 대한 감흥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전쟁과 시간의 파도를 이겨내고 우뚝 서있는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많은 여행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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