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무료 시내버스로 둘러보았던 두브로브니크 주변 시티투어
어느덧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4박 5일의 일정이 처음엔 조금 길게 느껴졌지만, 도시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만났던 풍경들과 사람들, 그리고 낯설면서도 낯익은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날은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두브로브니크 패스로 교환한 무제한 시내버스 티켓을 최대한 활용해, 도시 바깥의 풍경을 만나보기로 했다.
운 좋게도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흐리기만 했던 지난 며칠과는 다른, 두브로브니크의 맑고 깨끗한 풍광이 펼쳐졌다.
숙소 근처에 있던 현대 미술관에 잠시 들러 여유롭게 작품들을 둘러본 뒤, 힐튼 임페리얼 호텔 인근의 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정류장에 부착된 시티맵과 노선도를 살펴보며 첫 목적지를 정했다.
전날 버스 안에서 스쳐 지나갔던 라파드(Lapad)를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라파드에 도착해 바닷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고, 잔잔한 파도소리와 함께 평온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이 요트들은 현지인의 것일까, 아니면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의 것일까 하며 한참을 바라보며 상상에 잠겼다.
과거 강력한 해양국가였던 크로아티아의 흔적이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중세의 향기로 가득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와는 달리 라파드는 현대적인 여유와 고요함이 깃든 공간이었다.
단지 버스로 10분 거리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 다른 시대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해변 산책길과 리조트들이 늘어선 라파드를 걷다가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또 다른 노선의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는 ‘모코지카(Mokošica)’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어촌 마을의 분위기를 풍겼고, 두브로브니크나 라파드보다 훨씬 조용하고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길 위로 사람 그림자는 드물었지만 그만큼 평화로움은 더욱 짙어졌다.
카페 하나쯤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걷던 길 위에서 문 닫힌 겨울철 카페를 발견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지만 이곳만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시내버스로 즐긴 소소한 하루치의 여행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을 무렵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일몰.
붉게 타오르는 석양 아래로 성벽과 지붕들이 천천히 황혼 속으로 잠겨 들었다.
이날 저녁은 구시가지에서 부산에서 만난 모녀가 추천해 주었던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했다.
생선구이와 닭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을 주문했다.
그런데 생선구이를 일부 먹다가 순간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덜 익혀져 있었다.
정중하게 식당 주인에게 이야기하자, 곧바로 새로 조리해 주었고, 미안하다며 생선 요리와 닭 요리 모두 계산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와인값만 계산서에 찍혀 있었고, 이런 정직한 태도에 오히려 따뜻함을 느꼈다.
중세와 현대, 역사와 일상, 관광지와 동네 골목이 어우러졌던 시간들.비가 잦았던 날씨도, 불완전했던 식사도, 그 모든 것이 이 도시에서의 기억으로 남는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도시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