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을 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평소 운전해서 다니다가도 길이 막히는 시간에는 지하철을 타곤 하는데 몇 번씩 갈아타야 하는 길은 어렵다.
연말이라 계속되는 일정에 지쳐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집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휴대폰을 꺼내서 보고 있었다. 20~3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내 앞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흥겨운 듯 얘기한다. 표정이 유난히 밝아 에너지가 부러웠다.
"언니 돼지띠시잖아요. 맞죠?"
마르고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한 칸 아래 서있는 통통하고 머리가 긴 여자에게 묻는 거 같았다.
"아니, 돼지띠는 아니고 그냥 돼지"
무방비 상태에서 그게 왜 그렇게 우습게 들렸는지 하마터면 소리 내서 웃을 뻔했다. 촘촘하게 서있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들에게 웃음을 숨기기 위해 애썼다. 짧은 에스컬레이터가 길게 느껴지기도 처음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보니 어느새 그들은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만원 지하철에 올라 조금 전 해프닝을 곱씹었다.
신기하게 내가 지친 것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