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생카를 열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

by 도라

나는 아이돌 덕질이 처음인데도 겁 없이 생카를 열어본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해 말하자면 매우 길어지고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피폐해진다. 정말 간략하게만 짚고 넘어가겠다. 물론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명백하게 좋은 추억이다. 내 생각보다 신경써야 할 일이 훨씬 많았고 그걸 예상하지 못했으며 회사 생활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 정말이지 힘들었기 때문이다.


1. 디자인을 직접 할 자신이 없다면 80~100만원 정도 쓸 각오는 돼 있어야 한다.

생일카페를 연다고 해서 그 수익이 주최자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수익은 카페에 돌아가며, 주최자는 카페를 대관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대관비를 따로 안 받는 카페가 대다수였지만 요즘에는 대관비를 따로 받는 카페들도 있다.

생카를 열면 모든 게 다 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이 내가 여는 생일 카페를 인지하고 찾아와야 하는데 보통 이를 위해 포스터를 만들어 트위터 계정에 공유한다. 여기서부터 돈 드는 일이 시작된다. 디자인을 1도 할 줄 모른다면 적절한 사람을 찾아 일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 이러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계정이 많기 때문에 그중에서 잘 찾아서 맡기면 된다. 이외에도 디자인 맡겨야 할 일은 계속 생긴다. 만들고 싶은 굿즈 디자인 비용, 제작 비용, 배송비, 포장비 등 생카를 열면서 '이것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모든 것이 다 비용이다.


2.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주말에도 당분간은 마냥 놀 수 없다.

일단 생일 카페를 열기 위해선 먼저 내가 생일 카페를 그냥 'OO아 생일 축하해. OO이의 생일파티에 놀러와 주세요"라고 하면 아무래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꼭 가야할 이유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미약하게라도 내가 여는 생일 카페만의 컨셉이 있어야 하며 이 컨셉이 있어야 내가 디자인을 맡길 수 있다. 디자인을 맡길 때도 내가 원하는 컨셉에 대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글만 띡 써서 보내는 건 절대 안 되고 어느 위치엔 뭐가 들어가고, 어떤 레퍼런스가 있는지 등 내가 원하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확실한 결과물 또한 받을 수 있다.

생일 카페용 굿즈를 만든다고 치자. 일단 어디서 만들지부터 찾아야 한다. 제작 업체 가이드라인에 맞게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과 퀄리티를 따져 업체를 찾은 다음엔 이를 잘 만들어 줄 디자이너를 찾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컨셉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이를 받은 다음 피드백하여 수정본을 받고 최종 확정한 다음 제작을 맡긴다. 제작을 맡긴 후에 제품이 내가 상상했던 그래도 100% 완벽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만약 불량품이 오거나 생각처럼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이를 다시 제작하는 수고 또한 생길 수 있다. 그러니 퇴근 후나 주말에 휴식할 틈이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포장이 남아 있다. 일반적인 컵 제작 최소 수량에 맞춰 준비하더라도 약 500개 정도 된다. 생카에서는 음료와 함께 생카용 컵과 각종 굿즈가 세트로 제공되는데 이 굿즈가 여러 개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포장해야 한다. 만약 굿즈가 스티커와 포카, 키링 이 3개라고 치자. 이를 카페 사장님이 팬들에게 편리하게 나눠줄 수 있도록 비닐 하나에 스티커와 포카, 키링을 하나씩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카를 준비하기 1~2일 전에 밤을 새워 포장을 하는 팬들도 많다. 혹은 친구들을 불러 이른바 포장 공장을 가동한다. 그리고 카페로 미리 보낼 수 있는 짐들은 택배로 부친다.

생일카페 전날엔 카페를 꾸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열심히 꾸며야 한다. 카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미리 구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드디어 D-day가 왔다는 사실에 후련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꾸미다 보면 재밌기도 하다. 퇴근 후 잠깐 시간 낸다고 꾸밀 수 있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오후 반차나 하루 휴가를 사용해 꾸미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생일카페 마지막 날엔 꾸며 놓은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냥 '생카 열어야지' 얕잡아 봤다간 큰코 다칠 일이다. (큰코 다친 사람이 진지하게 전합니다)


3. 생카가 끝나도 흔적은 꽤 많이 남는다.

생일 카페를 위해 일반적으로 컵을 500개 정도 주문한다. 대부분의 제작 업체가 컵 제작 최소 수량을 500개 정도로 두고 있으며 이보다 적게 만들 경우 단가가 확 차이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일 카페를 3~5일 정도 진행하는데 이때 방문자 수가 500명이나 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물론 인기 많은 생카의 경우 500명 이상이 방문해 굿즈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생일카페가 하나만 열리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취향에 따라 골라서 몇 개만 가는 팬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엔 굿즈는 300개 정도만 만들었는데 이마저도 한 50개 정도씩 남았다. 남은 굿즈들은 카페 사장님의 배려로 추후 카페에 방문하는 팬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경우도 있고 생일카페에 방문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트위터 계정을 통해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4. 당신이 극I 성향이라면 더 힘들 수도 있다.

꽤나 많은 생일카페에서 럭키드로우 이벤트를 진행한다. 뽑기 등을 통해 굿즈를 받을 수 있는 이벤트다. 생카에서 팬들이 음료를 마셔야만 굿즈를 받을 수 있기에 이를 음료값으로 여겨 모든 수익은 카페에 돌아간다. 하지만 럭키드로우는 주최자가 직접 카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여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이 수익은 주최자가 갖는다. 생카를 연 사람은 경제적 타격을 줄일 수 있고, 방문자를 늘릴 수 있으며 팬들은 이벤트를 즐기고 갖고 싶던 굿즈까지 얻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극I 성향의 사람이 생일카페 기간 내내 카페 구석에 앉아 모르는 사람들을 끝없이 마주하고 이벤트를 진행하는 건 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이렇게 정성 들여 축하해줬다는 뿌듯함이 남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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