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활 7년, 마침내 끝낼 결심
1.Live with the flow, ‘되는 대로 살자’가 목표였던 평균치의 인간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드는 생각인데 내 인생에 '결심'이란 걸 한 일이 있었던가 싶다. 34년 인생을 돌아보건대 나는 결단코 무엇을 하고자 결심하고 그 결심대로 나의 전력을 다해 이루고자 노력하며 매달려 본 적이 없다. '선택과 집중'이 최고라고 합리화하며,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만 '가성비 좋게' 취사선택하고 내가 못할 것 같은 것은 미리 포기해버리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땅바닥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은 면해 자존감에 타격을 받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그런 안정 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그래서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늘 중간쯤을 유지하며 살았지만 늘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취미생활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서 인생이 그리 재미없거나 따분하진 않았다. 아마도 평범한 30대 사무직 직장인의 평균치 정도로 살아온 거 아닐까 싶다. 최저점도 최고점도 치지 않는 중간점의 삶. 그렇기에 단 한번도 차가워져 본 적도, 끓는 점에 다달아본 적도 없는 삶 말이다.
물론 평균점을 유지하며 사는 것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평균점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쉬웠다. 'Live with the flow' 캘리포니아의 히피들이나 말하고 다닐 법한 이 문장이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파도가 치면 치는대로, 누가 흔들면 흔드는 대로, 다만 중심은 잡고(혹은 잡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이는 바닷가에서 잔잔하게 패들보트를 타는 느낌으로 말이다. 아마도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전형적 월급쟁이였던 아빠의 영향이 클 수도 있겠다. 내가 공무원이 되기로 한 데에는 아빠와 그 외 비슷한 주변 어른들의 영향이 아주 컸으므로.
2. 처음으로 평균에서 벗어나기
각설하고, 나는 2015년 10월 9급 국가직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공무원 시험도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하진 않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 전에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필수 공통과목인 한국사, 영어, 국어는 기본기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과목 두 개만 공부하면 됐다. 그러한 연유로 벌써 직장인이 된 것마냥 ‘9시-6시' 공부 스케줄을 유지해가며 절실함 없이 얼레벌레 운 좋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7급을 목표로 공부했으나 일정상 9급 시험이 먼저 있었고, 9급 시험에서 합격선을 넘는 점수를 받으니 적당히 하고자 하는 항상성이 발휘되어 '아니 뭐 7급까지 할 필요 있나 이정도면 됐지' 의 합리화로 공부를 멈춰 9급 공무원으로 공채 임용이 됐다.
평균점에 맴도는 인간인 나, 2022년 9월 청명한 가을날. 정확히 7년만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이것만큼은 평균에서 벗어났다는 게 웃어야 할 일이라면 웃을 일인가 싶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그만두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또한 많은 추측들을 한다. 대부분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다. 보수적인 분위기, 폐쇄적인 환경, 자기 발전을 할 수 없는 구조, 낮은 연봉,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성과시스템, 반복되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지루함, 누구도 짤리지 않은 - 그러므로 이상한 놈, 나쁜 놈, 못돼처먹은 놈 모두모두 안 짤리고 공생하는… 어떻게 보면 장점이고 어떻게 보면 단점인 그놈의- ‘신분보장' 시스템,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하면 보상을 해주는 구조가 아니라 일을 더 몰아줘버려 열심히 일 한 사람 허탈하게 하는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다 영향을 끼쳤다.
3. 롤모델이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결정적으로 사직원을 던진 원인이라 말하기는 석연찮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7년을 일했다. 평생 일하는 공무원들의 주기를 생각하면 아장아장 애기 수준에 그칠지 모르지만 내게는 엄청난 기간이다. 나는 무언가를 7년 이상 한 적이 없었다. 7년이 뭔가. 내가 대학생 때 가장 오래한 알바가 6개월이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 바이엘 상권 몇 페이지, 플룻 3개월, 미술 1~2개월, 스쿼시 2개월....... 심지어 가장 오래 했던 연애도 3개월이다. 뭐든지 다 하다 말아버리는 나의 용두사미 이력을 생각하자면 이는 정말 기적적인 일이다. 내가 내 자의를 가지고(자의라고 할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따지는 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꾸준히 한 것중 가장 길게 한 것이 이 공직생활이다.
7년동안 더럽고 치사하고 답답한 일이 많았고 정말 누군가에 대한 살인충동이 일기도 했다. 정말 별 꼴 다 봤다. 세상에 별의 별 희한한 인간들도 많구나 라는 것을 느꼈고 나의 상식이 당연하지도 않고 하물며 사회적인 약속이나 기본적인 상식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그것만으로도 논문감이라 이 정도로 말을 마치는 거지, 정말 꿈에서도 그런 못돼먹은 인간들에게 시달려서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간 적도 있었고 자칭타칭 '멘탈미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멘탈이 좋다고 자부했는데 우울감과 무기력증으로 상담센터를 찾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만 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만두고 싶은 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섣불리 그만두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실무와는 전혀 연관도 없는 국어, 영어, 한국사 시험 점수 잘 나온 것을 인정 받아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업무를 맡아서 반쯤 넋나간 허수아비처럼 앉아있었던 게 다인 나의 경력으로 재취업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그런 두려움. 그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이 곳은 그저 돈을 주는 곳’, ‘의미 두지 말자’, ‘여기서 성취감을 느끼려 하지 말자’라는 말들로 다독이거나 세뇌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던 어느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한국나이로 서른넷. 삼십대 중반이다. 어리지 않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완전 늦은 나이는 아니다. 이 악물고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다 결국 몇 년 뒤에 터져버려서 내가 삼십대 후반이 되고 사십대가 된다면 어떨까? 그때 가서 후회하며 그만두고 알바라도 하면서 뭘 시작할 수 있을까? 새로 뭘 시작하고 새로 뭘 배울 수 있을까? 지금보다 가진 게 더 많아질 수도 있는데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은 대화였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주로 주변에 일하는 공무원들과 이야기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 누구도 자부심이 충분히 있거나 뿌듯해 하거나 행복하거나 만족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이젠 나이가 많아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이 정도 승진을 했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켜본 것들도 그랬다. 적어도 내 주변에, 내가 되고 싶은 롤모델이 없었다.
멋지게 사는 사람은, 적어도 ‘아 저 사람 좀 재밌게 산다’ ‘조금 닮고 싶네?’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바깥에 있었다. 그때부터는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시기였다. 그간 내가 얼마나 편견에 가득찬 인간이었는지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세상에 직업은 너무도 많고, 사는 모습도 다양하고, 정말 얼마나 다채롭게 다방면에서 경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지… 나는 공무원 생활이 주는 '안정적 미래'라는 마약에 취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전에는 은연중에 나보다 아래쯤으로 놓고 깔보던 곳에 있던 사람들이 정말로 빛나 보였다. 미래를 꿈꾸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살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전인 것이었다.
결심의 이유는 결국 빛나는 곳으로 가고 싶단 것이었다. ‘안정성’이라는 우물 바깥으로 나가 진짜 세상을 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삶. 끓는 점에도 어는 점에도 도달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끓는 점이든 어는 점이든 평균치를 벗어나 그 어디든 가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