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순식간에 소중한 걸 앗아가 버렸다

열아홉, 돈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때

by 도라해

“문창과 아니면 대학 안 가요.”


학원 한 번을 다녀보지 않은 내가 고3 원서를 쓰는 기간에 문창과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창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부분 실기를 준비해야 됐는데, 집에 돈이 없는 걸 아니까 그저 혼자서 묵묵히 실기 준비를 해나갔다.

이를 보다 못한 고3 때 담임선생님이 과외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선생님 남편의 제자가 문창과에 다니고 있으니 조언을 구할 겸 만나보라고 해서 나간 것이었는데 막상 과외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기회를 붙잡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결국 부모님에게 과외를 받고 싶으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이전에도 학원비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기에 불안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간절했다.

밑져야 본전, 엄마보다는 아빠가 마음이 여렸다.

나의 전략은 아빠를 공략하는 것.

아빠는 자신의 현실을 잠시 잊을 만큼 딸을 사랑했다.

돈이 없으면서도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쨌든 성공이었다.


일단은 내가 제대로 잘해서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시 희망에 부풀었다.

과외 선생님에게 나의 글을 첨삭받으며 꿈을 더 키워나갔다.

글을 쓰는 것이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다.


과외를 받은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엄마는 아빠가 없을 때 나를 불러 앉혔다.


“과외는 이제 그만해야 될 것 같아. 지금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냐.”


결국 또 나는 돈 앞에 졌다.

집안 사정상 한 달 만에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가난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며 선생님에게 종종 급식비 미납 통지서를 받을 때는 잠시 부끄러울 뿐, 집에 돈이 없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없어졌을 때, 가난은 소중한 걸 순식간에 앗아가 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픈 깨달음은 열아홉의 나를 밤새 울게 만들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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