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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Dec 24. 2018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

겨울이 지나자 아기 백조들이 태어났다. 그들이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의 예전 어린이집은 도시의 가장 남쪽 경계에 있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벤라트 슐로스라는 공원에 자주 들렀다. 궁전을 뜻하는 슐로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궁전에 딸린 넓은 정원과 숲으로 이루어진 공원이었다. 벤라트는 공원이 있는 동네의 이름이다.   

  

 공원의 입구로 들어서면 가운데 부분에 분수가 있는 둥근 모양의 운동장만 한 호수와 그 뒤로 연한 분홍색의 건물 3채가 보였다. 그중 가장 큰 건물인 중앙의 건물 앞쪽에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계단이 백조의 날개처럼 뻗어 있고, 계단의 하단과 상단에는 사자 모양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양 옆의 별관은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실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본관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기 위해서인 듯 낮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본관과 별관 사이의 흙길로 접어들면 좁고 긴 직사각형의 인공호수가 매끈한 활주로처럼 뻗어 있었다. 호수의 좌우로는 폭이 20m 정도 되는 잔디밭과 마차가 지나다닐 만한 너비의 산책로가 길게 이어졌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궁전과 인공호수의 모습이다.

 호수 주변에는 새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검은 회색 빛깔의 거위였으나, 청둥오리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백조는 언제나 한 쌍만 있었다. 새들은 공원의 주인이었다. 끊임없이 풀밭을 쪼아 대거나 하늘을 유유히 날며 아무 곳에나 분비물을 남겼다. 사람들은 빵이나 모이를 새들에게 주었다. 새들은 공원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나는 공원의 가장 바깥쪽 둘레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이어진 그 길은 2.5km 정도로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걸렸다. 길을 따라 작은 개울이 흘렀는데, 개울은 넓어지면서 두 개의 커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그 연못 위에서도 언제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의 하얀 막이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는 계절이 되었다. 겨울이 되자 새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새들은 굴을 파서 숨거나 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궁금했다.     


 3월이 되자 하루 이틀 해가 뜨는 날이 늘어났다. 숲 속 풀밭 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들조차 조금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때쯤 새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새들은 궁전 앞쪽의 커다란 직사각형의 인공 호수가 아닌 숲이 우거진 연못이나 개울가에서 발견되었다.      


 겨울을 보낸 새들은 놀랍게도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새끼들은 엄마, 아빠와 꼭 닮은 모습으로 그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린 새들은 하나 같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아직 깃털 색이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청둥오리 새끼는 청둥오리 같았고 거위 새끼는 한눈에 봐도 거위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백조의 새끼만은 백조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미 백조와 함께 있는 아기 백조들의 모습이다. 생후 몇 개월은 된 것 같다. 사진은 실제의 모습보다 잘 나온 듯하다.

 아기 백조들은 지저분한 회색이었다. 하얗지 않아도 차라리 검기라도 하면 깔끔할 텐데, 얼룩덜룩 지저분하고 고르지 않은 회색이었다. 마치 1년 정도 지저분하게 쓴 걸레 같았다. 아니면 구정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갔다가 말린 모습이었다. 윤기가 흐르고 빛이 나는 날개를 가진, 긴 목과 우아한 둥근 곡선의 어미 백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주둥이 역시 노랗지 않고 잿빛이었다. 아기 백조들은 사랑스럽다기보다는 불쌍했고, 오리나 거위의 새끼들보다 훨씬 못생겨 보였다.     


 백조 새끼들을 보면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가 그저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어낸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에 바탕을 둔 것임을 깨달았다. 아기 백조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여 이야기를 그려 낸 안데르센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나 저제나 아기 백조들이 환골탈태하기를 기다렸다. 아기 백조들이 못 생긴 껍질을 벗고 하얀 날개를 활짝 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공원 가장 외곽의 산책로를 돌면서 그 옆 연못에 자리 잡은 백조 가족들을 거의 매일 지켜보았다. 아기 백조들을 보는 것은 산책을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아기 백조들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덩치만 커져갈 뿐 못 생긴 모습은 여전했고, 오히려 어린 아기의 귀여움마저 사라졌다. 점점 자라는 몸집에 비해 하염없이 짧은 날개는 처량해 보였고 보송보송함을 잃은 검회색의 지저분한 깃털은 고르게 염색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청둥오리나 거위들이 날마다 눈에 띄게 부모의 모습을 닮아갈 때도 백조 새끼들은 백조의 자식들이 맞는지 의심만 더해갔다. 다른 새들로부터 놀림받고 따돌림당하기에 딱 좋았다.     


 못 생긴 백조들이 어른 백조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다린 것은 단지 안데르센 동화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친구들이 나 얼굴이 노랗다고 놀렸어. 다른 애들은 왜 다 하얀데 나만 노란 거야? 난 못 생긴 것 같아.”  

 아이들이 별생각 없이 말한 것이겠지만, 놀랍고 걱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아이가 알고 있는 동화이긴 했지만, 아이에게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말했다.

 “너는 백조인데, 사람들이 아직 못 알아보고 있는 거야.”

 어른들에게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야기일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미운 오리 새끼가 언제 백조로 변하는지 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달리 아기 백조는 금세 어른이 될 것이기에 그 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7월까지 공원을 찾았으나, 끝내 어른 백조가 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즈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아이들의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어 한 동안 그 공원에 가지 못했다.     


 10월 중순쯤 우연한 기회에 공원을 다시 찾게 되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평일 오전보다 사람이 많았고, 곳곳에서 백조처럼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공원 외곽의 산책로를 향했다.

 “아빠 어디 가는 거예요?”

 “저쪽 연못으로 가면 백조가 있을 거야. 아기 백조였는데 이제는 어른이 되었는지 보러 가는 거야.”


 하지만 백조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던 개울가 연못은 텅 비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개울가를 훑었지만 백조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 백조들뿐만 아니라 어미 백조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에 발길을 돌려 궁전 정면에 있는 직사각형의 인공호수로 향했다. 그곳은 새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었다.


 호수 위에는 한 쌍의 백조가 있었다. 그들이 원래 있던 부모 백조인지 어른이 된 새끼 백조 한 쌍인지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된 백조들이 공원 어딘가에 따로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를 떠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 독립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공원 관리인들이 한 쌍의 백조만 남기고 어디론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모를 허탈감이 밀려왔다. 아이 역시 백조들이 없다면서 투덜거렸다. 


 아마 미운 오리 새끼들이 백조가 되는 순간을 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성장하는 모든 것은 어느새 자라나 있는 법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만 변화의 순간은 짧다. 예전에 기르던 철쭉이 그랬고, 아이들이 그렇다. 독일에 온 지 1년 만에 아이들의 키와 마음은 부쩍 자라나 있었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를 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새끼 백조들은 부모의 품을 떠난 어딘가에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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