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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Dec 03. 2018

독일 할머니의 비웃음을 사다

독일 아이들에 비해 버릇없는 우리 아이들, 문제 있는 건 아닐까.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계좌를 만들기 위해 은행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고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우리 아이들은 결코 얌전한 편이 아니다. 장난꾸러기에다 시끄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독일에 있을 때 그 시끄러움이 더 유별나 보였다. 식당이나 빵집과 같은 공공장소에 가면 독일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 아이들만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심지어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날 은행에서도 그랬다. 서로 장난치다 싸우고 울다가 다시 웃고.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멈추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을 혼내면 더 시끄러워졌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가 지긋한 독일 할머니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대로 가정교육을 못 받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장난치던 둘째 아이가 마침내 의자에서 꽈당 떨어졌다. 둘째는 울먹였으나, 그것을 본 할머니는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은근히 비웃었다.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독일 집 화장실에는 이런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라는 뜻이다.

 그 할머니가 그럴 만도 한 것이 독일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놀라울 정도로 얌전하다. 어린아이들조차 차분하고 진중하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sophisticated’하다. 그것이 기질의 문제인지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만 3-4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도 식당에서 침착하고 단정하게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부모가 떠먹여 주는 일은 절대 없다).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는다. 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호텔 로비에서 시끄럽게 장난치며 돌아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은 십중팔구 독일 아이들이다.       


 확실히 독일인들은 공공장소에서 떠들썩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눈치를 주고 불편해한다. 식당이나 은행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게 옳은 건 아니지만, 다른 유럽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눈치 주는 정도가 심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말할 것도 없이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네덜란드만 돼도 아이들이 식당에서 떠드는 것이 용서가 된다. 그 나라 사람들은 식당에서 조금은 소란스럽게 식사를 하고 어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더 시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독일의 식당은 대부분 조용하다. 아이들이 그런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 손님들과 종업원들은 하나 같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독일에서 식당이나 병원에 갈 때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시끄럽게 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고,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독일인들의 빈축을 살까 봐 걱정했다. 조용히 하라고 몇 번을 다그쳐도 달라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절망감을 느꼈다.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하고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도록 신경을 쓰긴 했지만, 독일에서는 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칭얼대고 제멋대로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공장소로 가는 것이 꺼려지다 보니, 우리는 한 동안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지 않았다.     


 의젓하고 차분한 독일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과 너무나 비교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너무 버릇없는 게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한국 나이로 7살, 5살이었으니 이제는 충분히 부모의 말을 이해하고 분위기를 파악할 만한 나이가 된 것 같았지만,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근심은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버릇없게 키운 것이 아닌가였다. 조금 더 엄격하게 교육을 했으면 달라졌을까. 우리 딴에는 가르칠 만큼 가르치고 혼낼 만큼 혼냈다고 생각했지만 더욱 철저하게 훈육을 해야 했던 것일까. 


 아이들의 버릇없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 아내는 자신이 아이들의 태교를 잘못한 것은 아닌지, 혹은 할머니 손에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지 생각하며 애를 태우기도 했다.


 그러던 중 생각이 바뀔 만한 아주 사소한 일이 찾아왔다. 어느 날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머물던 지인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법조인들 중 가장 착실하고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고 진지했다.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의 그들은 마치 독일인들 같았다. 


 그들에게는 6살인 아들 A 군이 있었는데, 나와 아내는 A 군 역시 부모를 닮아서 의젓하고 차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A 군과 비교하여 우리 아이들이 막무가내인 모습을 보이면 너무 부끄럽지 않을까.   


 하지만 A 군은 그런 예상을 무참히 깨고 식당에 들어가 앉자마자 의자와 식탁 사이를 넘나들며 소란을 피웠다. 급기야 빨대를 콜라에 대고 부글부글 불어 넘치게 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이 유별난 게 아니구나.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구나. 지나치게 독일 아이들과 비교해서 버릇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겠구나. 


 다른 아이가 식당에서 소란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느꼈다는 게 아이러니긴 해도, 그 일은 우리가 느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고 흥이 넘치는 게 자랑스러운 건 아니어도, 이제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장난치고 떠드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을 계속 다독이면서 조용히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예절 교육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타고난 기질이 잘못되었다거나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해결책은 끊임없는 관심과 가르침, 그리고 시간이다.


 독일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식당에 조용하게 앉아 식사를 하는 독일 아이들을 볼 때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나 공동체에 억눌려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부정하는 훈련을 받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독일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지나치게 무표정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그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게 된 과정이 억압적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독일 아이들의 타고난 기질 자체가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교육받은 결과일 수도 있다.   


 나는 교육학자가 아니어서 아이들의 예의바름이나 버릇없음이 기질로 인한 것인지 교육으로 인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우리 아이들은 식당에서 또 소란을 피울 것이란 사실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줄 것이다. 아이들이 또 소란을 피울지도 모르지만, 머지않아 아이들은 혼자서 의젓하고 예의 바르게 식사할 것이다. 아이들의 무질서를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르치고 이끌어 가야 할 대상이다.   

아드벤츠칼린더. 날짜가 표시된 칸을 뜯어내면 작은 선물이 나온다.

 독일의 12월 전통문화 중에는 ‘아드벤츠칼린더(Adventskalender)’라는 것이 있다. 성령강림(Advent, 성탄)을 기다리면서 달력에 불규칙적으로 1부터 24까지 표시된 날짜에 해당하는 칸을 뜯으면 캔디나 장난감 같은 작은 선물이 나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작년에 산 아드벤츠칼린더는 불과 3일 만에 모든 칸이 다 뜯어지고 말았다. 12월 1일만 한 칸을 뜯었을 뿐 2일에 몇 칸, 3일에 나머지를 전부 열어서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냈다. 선물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를 차분하게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도 아이들에게 아드벤츠칼린더를 사주었다. 12월 3일인 현재까지 날짜에 맞게 진행되고 있으니 작년보다 발전한 셈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아드벤츠칼린더의 모든 칸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내년에는 아이들이 더 많이 자라나 있을 테니까.     


# 덧붙이는 이야기 : 그 후에도 아이들은 하루에 하나씩 그 날짜에 해당하는 선물을 꺼냈다. 결국 서두르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지켜서 24일에 달력의 마지막 칸을 뜯어냈다. 1년 동안 아이들이 자라난 결과인지, 독일식 교육을 받은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심하게 혼내고 다그치지 않아도, 그저 믿음만으로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바르게 성장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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