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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Jan 07. 2019

독일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다

독일에서 초등학교 입학이 갖는 의미, 점점 높아지는 독일의 교육열.

 독일에 온 지 1년쯤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가톨릭 재단이 설립한 학교여서, 동네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성당에서 입학식이 진행되었다. 성당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수백 명이 입장할 수 있는 크기였다. 1학년 학생수는 70여 명에 불과하지만 가족들이 많이 참석해서 앞쪽에는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입학식에 온 사람들의 복장은 놀랍도록 정중했다. 평소에는 항상 청바지에 니트만 입고 다니던 사람들이 마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정장에 넥타이를 갖추고 있었다. 여자들 역시 단정하고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편안한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상의는 그날따라 신경이 쓰여서 리넨 와이셔츠를 입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내 역시 사람들이 그 정도로 갖추어 입을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격식을 차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독일인들에게 초등학교 입학은 중, 고등학교의 입학이나 졸업 이상의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일 아이들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학교는 어린이집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통제된 생활을 하는 공동체이다. 그저 가기 싫다는 이유로 빠질 수 있는 어린이집과 달리 학교는 매일 오전 8시까지 가야 하고 이유 없이 지각하거나 결석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집에서는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같은 반에서 어울려 지냈지만 학교에서는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생활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고 숙제를 해야 한다.


 놀기만 하던 것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 자신이 가진 적성과 소질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면서 평가받는 것, 주변의 도움만 받던 아이가 사회 속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인들에게 초등학교 입학은 인생의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단계들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 만큼 입학식에는 가족들이 총동원되었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참석한 것이 보통이었다. 삼촌, 이모, 고모가 오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참석한 가족들은 긴장되어 보이기도 했고 감격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만약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봤지만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건물과 놀이터. 사진 오른쪽 아래의 한 초등학생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의 가방은 크기가 매우 컸다. 아이들이 작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자기 몸집의 두배쯤 되는 부피의 가방을 메고 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크고 무겁고 튼튼해 보이는 가방이었다. 가방에 책과 필통을 넣으면 꽤나 어깨가 아플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학창 시절 동안 짊어지고 지고 살아가야 할 무게가 느껴졌다.


 '기초학교'라 직역할 수 있는 독일의 초등학교(Grundschule)는 4학년까지만 있다. 독일 초등학교 제도가 우리나라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선생님 두 명(담임선생님과 보조선생님)이 한 반을 입학부터 졸업까지 4년 동안 맡아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생활 내내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바뀌지 않는다. 초등학교가 4학년까지만 있고, 학년에 따라 학급이 달라지지 않는 것에는 교육에 관한 독일인들의 철학이 어느 정도 묻어 있다. 의무교육이자 공통교육인 초등학교를 마치면, 기간학교(대략 5년), 실업학교(대략 6년) 및 김나지움(대략 9년)으로 교육과정이 나누어진다.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을 가는 학생들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다시 말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칠 무렵에 공부를 할 사람과 안 할 사람, 대학에 갈 사람과 안 갈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즉 만 10살 정도에 실업계와 인문계 학생을 구분하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학업에 대한 소질이나 기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학업에 적성과 흥미가 없는 아이들까지 억지로 공부를 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 독일 교육의 제도적 판단이다. 모든 학생들이 재능에 관계없이 성적에 매달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시간 및 노력과 돈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가진 공부 이외의 다른 재능을 낭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평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를 마친 직후 실업계와 인문계로 구분되는 제도에 대해 너무 이른 시기에 인문계 진학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기간학교, 실업학교 및 김나지움을 구분하지 않는 종합학교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김나지움이 아닌 기간학교나 실업학교에 들어가도 성적이 좋고 본인이 원하는 경우 김나지움으로 옮길 수 있다.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처음에 정해진 길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독일인 부모들에게도 자녀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을 들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예전에는 인문계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담임 선생님의 권한이었다. 한 아이를 4년 동안 관찰한 결과라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담임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인문계 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과 부모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경우 최종적인 선택권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있기 때문에 인문계 학교 진학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니면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쯤 공부를 못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독일 역시 교육열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독일인들 역시 자녀의 높은 학업성취도를 원한다.


 독일에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성적과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혼자서 만족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무너지는 공교육과 부담스러운 사교육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 없이 존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저녁 시간에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 남아 가족들과 식사하고 산책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생활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삶을 희망하고, 또 희망한다. 나는 사교육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1학년 교실. 가운데 있는 사람이 안고 있는 것이 슐 튀트이다.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은 슐 튀트(Schule Tüte)라고 부르는 커다란 원뿔 모양의 바구니를 하나씩 안고 있다. 원뿔 속에는 달달한 먹거리와 학용품 같은 선물을 가득 담겨 있다. 어떤 원뿔은 아이들의 키보다 컸고 여러 가지 장식이나 출신 국가의 국기를 이용해서 원뿔을 직접 만든 가족들도 많았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비로소 한 아이를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연신 아이들을 포옹하고 아이들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하지만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걱정보다는 설렘이, 아쉬움보다는 기대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7년 전 첫째가 태어났을 때 생각이 났다. 아내는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분만하는 의사 선생님이 실수로 아이의 정수리 근처에 작은 상처를 냈다. 그 상처 자국이 아직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혼자서 아이를 돌볼 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생각도 났다. 뒤집기는 했어도 기어 다니지는 못해서 잠든 아이를 안방 침대에 눕혀놓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얼마 후 우는 소리가 들려 달려갔더니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 울고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에 뻘건 자국이 나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7년이 지나 들뜨고도 차분한 표정으로 초등학교 입학식에 앉아 있었다. 긴장하긴 했지만 빛나는 눈과 살며시 다문 입술이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첫째를 꼭 안고 정수리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어느덧 입학을 축하하는 설교가 끝나고 아이들은 한 명씩 교단 앞으로 나가 신의 축복을 받았다. 나는 첫째 아이가 겪게 될 험난하고 다사다난한 미래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 책가방과 사탕 봉지에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관심사가 완전히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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