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도 삶의 본질적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와 아내를 지치게 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이었다.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은 특정한 요일과 시간대에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다음날 마침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동반하는 여행에서 미술관을 가는 것은 힘만 들고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여행 중에 미술관을 즐겨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랐다. 일단 들어간 후 너무 힘들면 금방 나오면 그만이니까.
오후 2시쯤 소피아 미술관으로 갔더니 이미 100m도 넘게 줄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 시간을 기다려서 입장했다. 오후 5시쯤 프라도 미술관으로 갔는데, 그곳은 줄이 더 길어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무료인 경우도 많을 텐데, 그깟 입장료 얼마나 한다고 두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을까. 얼마 안 되는 돈 앞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입장한 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관람하면서 더욱 진이 빠졌다.
이렇게 지쳐 있는 상태에서 스페인 내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도노스티아로 향했다. 도노스티아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로 프랑스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도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즐비한 ‘미식의 도시’로 알려진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바스크 지방을 가는 것은 평생 처음이었는데, 그곳은 스페인 중부나 남부와 많이 달랐다. 표지판이나 가게 입구에 스페인어 외에 바스크어가 적혀 있는 것이 이국적이었고,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반원 모양의 해변 근처에서 와인과 함께 타파스를 먹었다. 맛있는 음식과 활기찬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마침내 여행을 시작할 때 느꼈던 기쁨과 설렘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위기는 방심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저녁을 먹고 8시 반쯤 주차한 곳으로 가보니 차가 없었다. 처음에는 주차한 곳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렇지 않았다. 차가 도난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인지, 도난당한 것이라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당황스럽고 막막한 생각이 이어졌다.
아니면 불법주차로 견인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1월 1일 공휴일이어서 무료 주차가 가능했다. 맞은편에 있던 주차 기계에도 분명 공휴일에는 무료라고 적혀 있었다. 주차 위반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되짚어보았다. 주위를 돌아다니다 어떤 표지판을 보았고, 혹시나 해서 번역기를 돌려 봤다. 그곳은 ‘거주자 전용 주차구역’이었다. 1월 1일이어도(공휴일이어도) 거주자만 주차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평상 시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인해 주의 깊게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행지에서 차가 없어지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차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알 수 있을까.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밝을 때 근처의 경찰서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아내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변에 눈에 띄는 호텔로 무작정 갔다. 호텔이 그나마 영어가 통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스페인 사람들 두 팀이 와서 당황해 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갖은 몸짓 발짓을 해가면서 자신들의 자동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친절한 호텔 매니저의 도움으로 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마 난데없는 사람의 도와달라고 말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가 주차한 거리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차를 찾는 과정에서 벌금 및 견인료 합계 200유로와 자동차 보관소까지의 택시비 20유로를 지출해야만 했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였다.
하지만 기분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여행이 마침내 확실히 바닥을 치고 올라온 느낌이었다. 늦은 밤, 한참 동안 서성이며 추위에 떨던 아이들은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마침내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겠지.
예상대로 여행은 점점 나아졌다. 푸아티에보다 트로아가 좋았고, 트로아보다 룩셈부르크가 좋았다. 푸아티에와 트로아는 이번 여행 전까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도시였다. 유럽의 도시들은 비슷한 곳이 하나 없고 저마다의 특색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마지막 여행지는 룩셈부르크였다. 사실 여행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톨레도를 지나면서부터 아내의 기분이 다운된 탓이 가장 컸다. 아내는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워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독일에서의 취업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 패턴의 단조로움, 경제적 한계로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는 자괴감과 위축감, 길었던 이동거리로 인한 체력적 한계가 문제였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룩셈부르크에서 아내는 즐거운 기분을 되찾았다.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마트 계산원, 단정하고 안락한 도시 분위기, 풍요로움이 넘치는 거리와 상점들, 하루에 4 유로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지인들과의 반갑고도 아쉬운 저녁 식사가 아내를 새롭게 자극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아마도 동반자일 것이다. 동반자의 기분이 좋지 못한데 나만 즐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톨레도를 지나면서부터 아내의 탄성과 환호는 급격히 줄었고, 그것은 즉각적으로 나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의 기분까지 우울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온전하게 만끽하기 어려웠다.
아내의 답답하고 활기 없는 모습이 나에게 전염되어 나도 함께 근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내의 우울해진 기분으로 인해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삶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축이 잠시 흔들린 것이다. 이에 관해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잊지 못할 문장을 남겼다.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전에 우선 좀 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가운데는 이해에 대한 요구, 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2004년, 41쪽)
아무리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 아무리 많은 장소를 돌아다녀도 여행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과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은 조금 다른 장소에서 조금 짧은 시간 동안 흘러가는 삶일 뿐이다.
여행을 간다고 해서 어떤 사람의 본질이나 근본적인 환경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행에서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우선이다.
여행의 절반은 스트레스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나에게 여행은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느낌이다. 여행 중에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 혹은 '즐겁지 않음'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라는 생각이다.
룩셈부르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벌써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음 여행도 자동차 여행이 될 것이고 이번 여행보다는 짧은 거리를 갈 생각이다. 아마도 첫 번째 가는 곳은 프랑스의 브장송이 될 것 같다. 브장송. 멋진 이름이지 않은가? 왠지 사랑을 속삭이는 말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