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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Jan 28. 2019

그들은 그저 어깨를 들썩였다

독일의 문화 중 적응되지 않는 한 가지는 그들이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 집에서 이사를 나온 다음날 집주인은 우리에게 왓츠앱 whats app을 통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집을 체크해봤는데 변기와 화장실 구석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장난감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그중 일부는 사라졌다고 했다.


우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하기 전과 후에 열심히 청소했고, 이사하는 날 방문했던 집주인 부부 역시 만족해하였다. 장난감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사 올 때만큼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집주인이 어느 정도 허락한 사항이었다. 집주인은 아이들이 커서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이니 집에 놔두고 가는 것이고, 조금 잃어버려도 된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문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독일처럼 변기와 장난감을 다루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알려주는 것이 너의 독일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하루 동안의 청소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그럼 그렇지, 이사 나올 때 독일인들이 까다롭게 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째 조용하게 넘어가나 싶었다. 우리는 장난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기에 미안하다고 하면서, 변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변기에 물이 차 있는 바닥 부분이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데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변기의 바닥까지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다.      


정작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집주인 남자에게서 다시 장문의 문자가 왔다.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잘못 계산했으니 하루치 임대료를 공제하고 반환하겠다는 것이다. 아, 역시 결국에는 보증금을 공제할 생각이었구나.     


우리가 보증금에 대해서 협의를 한 것은 이사 나오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들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마주 앉아 이사 날짜까지 남은 날을 계산하여 몇십 몇 센트까지 계산을 했고, 그 금액을 쪽지에 적어 서명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문자를 통해 몇 번의 논쟁이 오간 끝에 우리는 알겠다고 말했다. 집주인 남자의 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치 임대료가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하루치를 공제한 보증금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틀 뒤 집주인 여자에게서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의논 끝에 나머지 보증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우리는 너희에게 나쁜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 너희들은 좋은 임차인이었고, 고맙다. 이제 모든 것이 문제없다.”

그날 오후 공제되었던 보증금 34유로가 입금되었다.


내가 이러한 일화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독일인들이 깐깐하고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집주인 부부는 며칠에 걸친 길고 긴 대화에서 “I am sorry.”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우리는 영어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독일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영어의 “I am sorry.”와 비슷한 말이 있긴 하다. 그건 “Entschuldigung(엔슐디궁)”이라는 것인데, 실례합니다 혹은 죄송합니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영어의 “Excuse me”와 가깝다. 길을 걷다 사람과 부딪히거나 마트에서 길을 막고 있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미안하다는 말과는 좀 거리가 느껴지는 어감이다. 또한 “I am sorry.”를 독일어로 번역하면 “Es tut mir leid(에스 투트 미어 라잇).”이라는 표현이 된다. 이를 직역하면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의미이다. 언뜻 보면 미안하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위 표현의 어감은 “(나에게 책임은 없지만)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어떤 책임감을 느끼기에) 미안하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독일에 와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문화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것이다. 미안한 표정도 잘 짓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미안하다는 말에 대응하는 독일어 표현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건 어떤 하나의 사건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독일 생활 내내 느껴온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의 어린이집 가는 길에 신호등이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신호등이 고장 났는지 신호가 바뀌어 빨간불이 꺼져도 초록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는 빨간불이 꺼져서 길을 건너갔는데, 어떤 사람이 따라와서 나를 똑바로 보면서 당당한 표정으로 내가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독일어를 잘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만약 한국말로 그런 얘기를 들었어도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을 것 같다.    

 

다음날 우연히 그 사람을 같은 신호등에서 또 만났다. 그 사람은 빨간불이 꺼졌음에도 초록불이 켜지지 않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 자신이 서 있는 쪽 신호등을 확인했고, 다시 고개를 돌려 길을 건너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왜 독일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미안함을 느낄만한 상황에서 언제나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양 팔을 반으로 접어 올리며 어깨를 들썩인다. 빵 집에서 점원에게 계산을 잘못했다고 얘기하면 점원은 그가 틀렸음에도 그저 어깨를 들썩일 뿐이다. 교차로에서 꼬리를 문 자동차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들의 경적과 눈초리에도 당당하게 그저 어깨를 들썩인다. 아마 이전에 살았던 집주인 역시 우리와의 대화 끝에 그저 어깨를 들썩였을 것이다.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내가 너에게 피해를 줬다, 그래서 내가 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런 행동은 불가피했으니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는 것 같다.      


물론 모든 독일인들이 이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떳떳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태도에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것은 자신감이나 당당함의 바탕이 될 수 있고, 훌륭한 토론자의 자세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어도 어쨌든 나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가 피해나 불편함을 겪었으면 그에 대한 책임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상대방이 느낀 아픔이나 상처가 해소되는 경우도 많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적어도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 그 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런데 한국인들 중에도 독일인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느낀 상처는 그 사람의 몫이지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저 미안하다고 하면 해결될 일을 어렵게 만들고, 상대방이 가진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 사람으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을 얘기하거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것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그런 줄 몰랐다. 미안하다, 좀 더 노력하겠다.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당신이 틀렸다고 지적하거나 꾸짖으려는 게 아니다. 내 감정도 조금은 생각해 달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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