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꿈꾼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의문을 품곤 한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장소와 사회는 우리 삶의 모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의 부모가 누구이고 내가 그들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는지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만약 나의 부모님이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다거나 내가 초등학생 때쯤 그곳으로 이민을 갔다면, 나는 지금과 비슷한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나 암스테르담 같은 대도시를 여행하면 그곳이 아무리 오래된 유적과 문화재로 가득 찬 곳이라도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과 시청 옆에는 사무실이 즐비한 보험회사의 빌딩이 있고 관광객 사이로 정장을 입은 은행 직원들이 오간다. 시청 광장의 식당 직원은 분주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깔끔한 형광색 옷을 입은 사람이 거리 구석구석을 정비한다.
도시마다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시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유럽이 아니라 한국의 대도시들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는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 살더라도 지금과 닮은 모습으로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와 마을은 다르다. 이것은 내가 시대성보다는 장소성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 혹은 남프랑스의 생폴 드 방스(St-Paul-de-Vence)에서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를 생각한다. 아마도 장소를 옮기는 것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것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가정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이탈리아의 시에나는 피렌체 남쪽으로 80km 떨어져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인구가 약 53,000명인 작은 도시다. 15세기까지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했지만 그 이후 피렌체와의 경쟁에 밀려 쇠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한참 달려야 시에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시 자체가 산지에 건설되어 있어서 발전 가능성과 확장성이 떨어져 보였다. 주요 산업은 관광업, 서비스업과 농업이라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접근성이 좋지 않은 내륙의 작은 도시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산업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아랫동네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심으로 올라갔다. - 시에나의 도심은 토스카나의 도시들이 으레 그러하듯 산지 위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 조용한 시골 마을인 아랫동네와 달리 윗동네로 들어서자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길은 곧장 하얀 대리석이 빛나는 시에나 대성당의 뒷면으로 이어졌고 좁고 굴곡진 거리를 지나면 부채꼴 모양의 델 캄포 광장이 나왔다.
시에나의 도심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번화했고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식당과 카페뿐만 아니라 기념품점, 식료품점, 아이스크림가게가 곳곳에서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중에서도 시에나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은 송로버섯(truffle)을 파는 식료품점들과 다양한 크기의 멧돼지 인형을 진열해 놓은 기념품점이었다. - 송로버섯은 시에나의 특산품이고, 멧돼지는 시에나의 상징이자 시에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거리에 늘어선 기념품점과 식료품 가게들을 보면서 내가 시에나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밀을 경작 하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방법을 배웠을까, 학교 공부에는 무관심한 채 송로버섯을 얼마나 채취했네, 식료품 가게에서 몇 백 유로의 매상을 올렸네, 하는 것만을 염려했을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과 웃고 떠들면서 기나긴 저녁을 먹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소파에서 축구를 보다가 잠들었을까.
한편으로는 이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시에나에서 평생을 살아온 카페 종업원이라면 어떨까. 매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밤이 깊을 때까지 관광객을 상대하다가 퇴근한 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적당히 멀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벌이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많은 친구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이웃들과 눈감고도 그릴 수 있는 익숙한 광장과 언덕들.
이것은 단조롭고 무료한 패배자의 – 대도시로 가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의 – 삶일까, 아니면 안정되고 여유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공동체적인 삶일까. 그곳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인가.
참 무의미한 가정이기는 해도, 다른 삶을 꿈꾼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지금 내 삶의 모습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삶의 방향 역시 언제나 높은 곳으로, 위로, 도시와 중심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깊어지거나 넓어질 수 있고, 아니면 뚜렷한 방향성 없이 흘러갈 수 있다. 반드시 어딘가로 향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멈춘다고 해서 쓰러지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같은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저마다 존중받고 의미를 갖는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우리는 역사가 우리의 기술,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두려움, 꿈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잊고 산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과 꿈을 품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역사가 지나간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면 여행은 우리가 속하지 않은 다른 장소를 공부하는 것이다. 여행 역시 역사 공부와 마찬가지로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과 꿈을 품을 수 있게 해 준다.
생폴 드 방스는 니스(Nice)의 서쪽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다. 시에나와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 있는 자리 잡고 있는 이 마을은 남프랑스의 자연과 문화로 풍요로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과거에는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 많은 예술가와 유명인들이 머물렀고, 현재에는 ‘커다란 아틀리에’라고 불릴 만큼, 골목길 곳곳이 미술관과 갤러리로 가득 차 있었다. 인구가 3500명 정도에 불과한 작을 마을인데, 대략 60-70개의 미술관과 개인 갤러리, 예술가들의 공방이 있다고 한다(2017년, 이지 유럽).
생폴 드 방스의 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화가와 미술가의 작품을 보았다. 갤러리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값이 나가는 그림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만약 그 많은 갤러리들 중 하나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꿈꾸었다. 아무리 내가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는 하지만, 생폴 드 방스에서 살았다면 꾸준한 노력과 의지로 인해 혹시나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 하루 종일 그림만 생각하는 생활은 어떨지, 하루 혹은 한 달에 얼마나 많은 작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갈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이들의 삶은 어떤 색깔의 그림일까.
1981년에 시에나에서 태어났다면, 혹은 1993년부터 생폴 드 방스에서 살았다면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다를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장이자 사회인으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숙명인 것일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는가, 아니면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는가. 아니면 그저 역사와 사회와 주변인들이 나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하며 사는 것이 정답일까.
시에나와 생폴 드 방스에서 살더라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그들 역시 하루벌이에 연연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부유함과 좋은 집을 원할 것이다. 그들 역시 작은 시골 마을을 벗어나 큰 도시로 가서 의사나 공무원이 되려는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행해하고 타인이 부여한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시에나의 식료품점과 생폴 드 방스의 작은 화실에서 다른 삶을 꿈꾼다. 조금 더 여유롭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금 덜 경쟁하고 덜 조바심 내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다.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여행하는 사람의 특권이다.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꿈을 옮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