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엄마,

나 이거 안 먹으면 안 될까?


엄마, 요즘

나 아침에도 잘 일어나고

환절기라고 기침하는 것도 줄었어.


밥도 너무 잘 챙겨먹어서

살도 조금 올랐어.


사실 꽤 많이 쪄서 통통해.

하하


엄마,

나 한약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그거 엄마 먹어

손발 찰 때도 먹고

오래 서서 어지러울 때도 먹어.


병원도 자주 가고

힘들 때 꼭 쉬어 엄마.


엄마도

오랜시간동안 힘들었잖아.


나 이거 안 먹어도 괜찮아,

엄마 잘 챙겨먹어

꼭.


꼭 꼭.



-Ram


1.

우리 부모님은 나를 너무 튼튼하게 낳아주셨고,

그 흔한 맹장수술 한 번 안 하고,

살이 찢어져서 꼬매거나 한 적도 없고,

부러져서 기브스를 하고 다닌 적도 없다.

마음껏 뛰고, 걷고, 달릴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 뿐.


2.

일 년에 한 번, 잘까말까하는 낮잠을 부모님댁에서 자고 있을 때,

엄마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잡채를 해주려고 마트에 가셨었다고 한다.

이런게 한약이지.


3.

근데 마음의 단단함 여부는 나도 몰랐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지고,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눈치를 보면서 선택을 미루고 있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하지만 살피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딱히 나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기도 하여

선택을 미루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어느 하나 담백하게 말 한 마디 꺼내기 어려운 형국이 될 지 누가 알았겠나.

나 원래 이렇게 복잡하게 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궁금하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해보고 싶은건 해봐야 직성이 풀렸는데.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에서 속 시원한게 좋은거 아닌가.

원하는게 있다면 내게 말했을 테지.

원하는게 있다면 내가 말했을 테지.

앞 뒤 꽉 막힌 고구마처럼 머리 속만 복잡한 채로 앉아있지 않았는데.

조금은 이제 걷어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Hee


아른아른 한 어릴 적 기억.


“이리와서 이거 한잔 마셔”

“윽 이게 뭔데요?”

“한약이야~ 이거 먹으면 빼빼마른것도 고쳐지고 힘이 날거야”


마른 내 모습을 걱정하시는 부모님 마음을 알았던 나는 쓴 맛 같은건 신경도 쓰지 않고,


“알겠어. 마셔볼게!”


그대로 한약 한접시를 다 마셔버렸다. 그 무렵부터 였을까? 밥을 한공기, 두공기 뚝닥 뚝닥 먹게 되었던 건.


알싸한 약방 냄새.

수 많은 약재들을 보관하고 때에 맞게 우려먹는 한약.


언제부터 멀게 느껴진걸까? 어쩌면 내 체질에 너무도 잘 받는 그 한약이 두려워 은연중에 피해온걸지도 모르겠다.



-Cheol


1.

고모부가 집에 와 몸에 찬 기운이 넘친다며 먹어야 할 한약재를 줄줄이 읊으시고 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한약 몇 박스가 집으로 왔다. 온 가족이 저마다의 이유로 한약을 먹었지만 집에 온 한약들 대부분은 내가 먹어야 할 것들이었다. 잔병 치레가 많아서, 또래처럼 살이 오르지 않아서, 키가 작아서. 온갖 이유를 들어 먹은 한약이 못해도 수십 제는 될 것이다. 밥솥에 넣어 둔 따뜻한 약봉지. 그게 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약이 너무나도 싫었다.


2.

시장통 한편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한의사도 아니면서 함부로 맥을 짚고 한약을 짖는 일도, 그 한약들이 가족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모두 제값을 치른 것들이란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한약보다도 고모부가 더 싫어졌다. 불법진료나 하는 사기꾼. 가난한 친척한테도 약을 팔아먹는 인간. 그 사람이 지어준 약이 정말로 약이 맞기나 한지. 도대체 뭘 믿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한약을 그렇게나 사 왔는지. 물어보니 가족끼리는 원래 돕고 사는 것이란다.


3.

집 냉장고에는 아직도 한약이 박스째로 들어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지 않을 수 없다.



-Ho


2019년 11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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