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열 세 번째 주제
어떠한 단어로도 이 기분이
완벽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분노도 쓰라림도 아닌,
배신감과 허망함 그 어디즈음
인것 같았다.
내가 공들였던 시간과
무형의 어떤 것들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야 말았다.
1년의 시간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
내가 결국 못나서-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은 나의 부족함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나약했고
결국 그 무리의 테두리를
걷는 사람일 뿐이니까.
어제와 오늘이
하루로 합쳐진대도
나는 결국 하루 정도의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나는 도망친다.
무엇도 갖지 못한채로 말이다.
-Ram
1.
사실 지난 한 주는 감정이 너무 뒤죽박죽 섞여버려서 컨트롤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는 빠르게 회복해서 다행스럽게도 안정을 찾았다.
정말 감정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아서 아슬아슬하기도 하면서도,
또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들여다보면 변하지 않을 것처럼 굳건하기도 하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하는 폭풍은 대비하긴 어렵고, 잘 넘기는 것이 최선이다.
폭풍에 맞서 싸우려다간 되려 후폭풍을 맞게 되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2.
말해야 안다는 사람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
만약 후자가 말을 꺼낸다면 전자는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어쩌면 후자는 전자가 자신에게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두려운 것은 아닌지.
사실 그 마음은 믿지 못한다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인지,
또는 되려 겁먹고 섣부르게 짐작하는 것인지.
결국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느 방송사 연예대상에서 누군가의 소감을 듣고 누군가가 호흡의 문제라고 말했다.
같은 말을 해도, 적당한 어조와 어투가 뒷받침되어야 진심이 더 잘 전달될 수 있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해투성이가 되어버리고, 엉킨 실타래는 더욱 커져버리겠지.
3.
나의 2주 동안의 말레이시아는 춥다. 추워!
어딜가나 에어컨을 엄청 빵빵하게 틀어놔서 치마를 자주 입는 나는
무릎이 시렵고, 다리가 시렵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더운 나라는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많이 덥기 때문에 에어컨은 어디서든 필수이고,
지금도 나는 에어컨을 틀어두고 긴팔에 긴바지에 겉에 집업 후드까지 입었다.
말레이시아에는 한국 스타필드 같은 (또는 더 큰) 대형 쇼핑몰이 정말 많은데,
그 쇼핑몰 내 옷 매장에서 가을, 겨울옷을 버젓이 팔고 있는 행태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외출 시 꼭 챙기는 것은 카페, 그랩 등 어디서든 무릎을 덮을 수 있는 내 핑크색 장미 손수건이다.
그리고 손수건 외에 또다른 소지품이 하나 더 늘었다.
말레이시아 집은 열쇠로 잠그는 문이여서 한국에서 잔뜩 사온 귀여운 키링을 (드디어 쓸모가 있는 내 키링) 열쇠에 달았다.
그랩푸드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또 시켜 먹고 싶은 음식점과 그렇지 않은 음식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과일주스와 요플레도 나름의 기호가 생겼다.
구글 맵 내 업로드된 사진들만 봐도 이제 어떤 분위기의 카페인지, 어떤 분위기의 음식점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나름 트렌디한 카페에서도 온리캐쉬인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있어서 현금과 동전을 더 챙기게 되었고,
링깃에 사실 무감각했는데, 직접 계산을 해보고 여러 카페와 음식점을 다녀본 결과 이 메뉴는 가성비가 좋은지,
이 메뉴는 그냥 비싼 메뉴인지, 또는 다른 곳보다 비싸게 받는 메뉴인지 감을 잡기 시작하게 되었고,
거리에 따라 아무리 가까워도 걸어갈 수 있는 안전한 거리인지, 그랩을 타고 가야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촛불이 하나씩 켜지듯 서서히 알아가는 나의 말레이시아.
-Hee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나흘이 지나간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햇살을 맞이한지 나흘.
어떠한 일정도 만들지 않고 하릴없이 보낸 나흘.
널어놓은 빨래를 걷고
배달온 장바구니를 풀어 정돈하고
몇가지 소품을 새로 꾸린 욕실에서 따듯히 씻고
선물받은 귤을 까먹고
천천히, 어영부영 그리고 충분히
휴식의 시간을 가진지 나흘.
이따금 찾아온 무기력증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참견많은 그 이는 또 끼어들었고
그건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이야
이럴땐 이런 방법을 써봐
대단히 똑똑한 말투로
무엇이든 다 분석해낸 것처럼
그런 말들이 소용이나 있을까
상황을 분석하는것조차 무의미한 일인걸
식욕조차 없어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떼우기 마련인걸
긴 시간을 놓고보면 다 지나갈 시간이라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분석도, 잔소리도, 해결책 같은것도 필요없는 멍한 일상인걸
-Cheol
1.
거듭해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일이 더 어렵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에너지를 빼앗기는 타입이라 혼자 있는시간도 점점 길어져만 간다. 하지만 올해는 굳이 만들어진 자리를 피해 도망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새 해라 그런 것은아니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자고 생각했다. 조금 더 무례하고 조금 더 배려심 없는 사람이 되어서 나도 에너지를 좀 받아오는 사람이 되자고, 내 마음대로 더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나이스한 사람은 피곤하다. 모두에게 그러려고 애쓰는 사람은 매력도 덜하다지.
2.
사람을 분석해서 정해둔 범주로 분류하는 일이 쓸모없는 일이란 것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내가 친구를 대하는 모습과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듯 사람의 단편적인 순간들을 마음대로 분석해 판단하는 일은 미련한 일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아무런 의도도 목적도 없이 누군가를 만날 때에 그나마 에너지를 덜 빼앗기기도 하고, 굳어져 버린 생각이 어떠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도 적을 테니까 말이다.
3.
결혼은 분명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결혼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는 연애도 굳이 하고 싶지 않았었는데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혜미에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구애하던 내 모습을 보면 역시 사람을 분석하는 일 따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구나 싶다. 저런 점은 나랑 너무 다른데. 자주 만나면 너무 다투기만 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들 마저 좋아하는 이유가 될 줄이야. 마음은 이성으로도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갖는 법이라더니.
-Ho
2020년 1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