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스물 두 번째 주제
우리집에는 아직 마스크가 있다.
같이 살던 동생은
외출할 때 까만마스크 하는 걸 좋아했었다.
멋이라나.
궁시렁대다가도
일을 할 때,
마스크가 보이면 동생 생각에 조금
조금씩 사두었다.
얼마 전
동생이 독립하고
그 빈 자리에 사두었던 마스크가
널브러져 있었다.
너를 위해 산 것들이
이제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게 되었다.
아직은 덕분에
조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네 빈자리도 조금
쓸쓸하고 큰 것 같다.
-Ram
1.
이상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사람 얼굴을 더 뚫어지게 쳐다보고 이야기하게 된다.
뭔가 가려져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이라고 해야할까.
분명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의 얼굴을 그렇게까지 쳐다보며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2.
공항가기 전날, 엄마는 나한테 마스크를 한 웅큼 쥐어줬다.
그 당시 마스크 한 박스를 네 명이 쓰고 있었는데.
나한테 그렇게 많이 주면 어떡하냐는 말에,
괜찮다고 걱정말고 가져가라고 했다.
엄마 덕분에 마스크 잘 쓰고 있어.
부디 모두 조심하길.
-Hee
지난주에는 일주일 넘게 그 마스크를 못구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세상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밖에 돌아다니는게 거리낄정도라니.. 어렸을 때, 물을 사 마신다든지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쓴 다든지 하는것들은 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걸로만 생각되었었는데.. 현실이 되다니.. 심지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민폐인걸로 생각될 정도의 사회분위기다.
그나마 나는 이 무렵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해서 한 개를 오래쓰기 시작해 걱정을 덜었는데, 뉴스에서는 곧 마스크 배급제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걸보고 또 시장논리에 맡겨야한다는 사람도 있고,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고..
대학교 때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보면서 이런 도덕적 딜레마나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생각할 일이 얼마나 되겠어 했는데.. 나이 좀 먹었는지 책 내용이 와닿으면서 불현듯 다시 책을 펼쳐보기도 한다.
-Cheol
1.
택배를 보내려 우체국에 들린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에 마스크를 구하려고 들어왔다. ‘어머니, 읍이나 면에 있는 우체국에서만 마스크를 팔아요. 우리는 없어요 없어. 아이고 내가 뉴스에서 다 보고 왔는데 왜 그렇지.’ 출입문에 ’마스크 없음’이라는 글자를 A4용지 두 장에 나눠 크게 출력해 붙여놓았는데도 못 본 것인지, 아니면 혹시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와 본 것인지, 힘이 빠친 채 되돌아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우리 부모님 같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한 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눠줬던 것을 며칠씩 쓰며 버텨내는 중이다. 직장인이 평일 오전 아침부터 줄을 서가며 대기 순번표를 받을 수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판매 시간을 맞춰 접속해도 번번이 움직임이 없는 페이지를 멍하니 바라보며 화만 키워야 했다. 기껏 살 수 있었던 마스크는 식약처 인증도 없는 싸구려였다. 부모님이 쓸 것 만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그런 것을 한 장에 사천 원 주며 사고도 잠깐이나마 안심하며 좋아했던 마음이 바스라지며 다시 또 화가 났다.
‘엄마랑 아빠는 동네 약국에서 몇 장씩 샀어. 우린 알아서 할 테니까 너만 걱정해.’ 엄마와 같은 부녀회에서 활동하는 약사가 부모님께 줄 마스크를 몇 장 미리 빼놨다고 했다. 우리에겐 고마운 일인데도 약국 문을 열었다 힘 없이 돌아 나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괜히 기운이 빠졌다. 생각을 더할수록 지옥같이 느껴지는 현실이다. 길을 걷는 누구나 분노에 마음이 까맣게 그을려지고 있을 것이다.
2.
올해의 생일도 마침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경칩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생기라곤 느낄 수 없는 삭막한 하루였지요. 온종일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로 뒤덮고 있었기 때문인지, 바이러스 덕에 꽤 오래전부터 쌓아오던 욕심들이 완벽하게 으스러졌기 때문인지. 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도 여전히 속 깊은 곳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는 것을 내쉬는 숨마다 느낍니다. 거창한 파티 같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꽤 많아서, 스페셜 한 하루가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망이 더 배가된 것 같아요.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안 된다던 말이 이 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지요. 점심 먹은 것이 체했는지 속까지 답답해지네요. 분명 어떤 의미로는 굉장히 스페셜한 하루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성공입니다. 아무튼 성공.
-Ho
2020년 3월 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