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서른 여섯 번째 주제
어떤 잣대를 들이밀어도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사이입니다.
서로를 딱 그리워하는
만큼만,
그 정도만 있어야 하는 사이.
욕심내지 못하고
갖지도 못하지만
놓지도 못할 사이.
나의 것도 아니며
내가 당신의 사람도
더더욱 아닌
어떤 미묘한 사이.
끊어내지 못하고
내내 울면서도
곧잘 달려나가고야 마는 사이.
이토록 잔인한 시간 속에서
버둥대다가도
이내 깨닫고 우는 사이.
아예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면 좋겠어.
-Ram
1.
가까이 붙어 있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서로가 한없이 외로워지지. 외롭다고 생각하지.
특히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격, 성향 등의 차이로 갈등이 생길 때.
그땐 아무리 착 달라붙어있더라도(사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손을 내밀어도 잡아지지 않을 것처럼 마음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너도 그랬고, 나도 그랬지.
그 순간을 견디면서도 우리는 외로움을 묵살했고
그 시간을 버티면서 그렇게 인연을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2.
가산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
출근하기 전 매일같이 영어학원에 갔었다.
당시 중급반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였지만(한 살 많은 언니였지)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엄청나게 멀게 느껴졌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어려웠었다.
항상 그 선생님은 날 보고 리싸!라며 LISA의 SA에 억양을 더 주면서 말했었는데.
내가 영어학원 고급반으로 올라간 이후 이 선생님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년 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친구처럼 사적으로 만났다.
물론 딱 한 번.
곧 내가 출국을 앞두고 있었고 그녀도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니.
며칠 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점원에게 이름을 말해주니,
컵에 내 이름이 LISSA라고 쓰여있었다.
고의인지, 잘못알아들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영어학원 선생님 억양이 생각났다지.
그래서 그녀에게 연락해봤다.
그녀는 결혼 후 부산으로 내려가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남편 직장에 TO가 나서 취직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젊어보이는 면접관이 틱틱거리며 질문을 던졌고
안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그 자리에 합격하지 못해서 더 기분이 나빴던 그녀.
지금은 다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예전에도, 지금도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때문에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 친하지 않아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
세상엔 별별 사소한 관계들이 많이 존재한다.
-Hee
적당히 가까운 사이
혹은 적당히 먼 사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
미주알 고주알 말해줄 사이는 아니어도
가깝다고 하기엔 적당히 멀어져버린 사이
핏줄이란건 무얼까
가족이란 울타리는 무얼까
때때로 의문 들 정도의 먼 사이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더 긴 시간을 거쳐야만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우린 그렇게 아직
먼 사이
-Cheol
1.
마음은 가깝지만 우리는 여전히 편도 5시간이나 걸리는, 우리나라 끝과 끝 도시에 서로 머문다. 참 멀리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서로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를 가까운 사이로 규정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른다. 그리고 아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이면에 가깝고 또 먼 지금의 간격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있다. 우리가 근처에 살았더라면 이미 불타서 바스러지고 없을 내 마음과 남은 흉터를 매만지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내가 나를 간직할 자신이 없어서, 먼 사이를 불가결한 일이라 여기며 다행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
사랑이 뭔지 잘 몰라서 사랑한다는 말은 전하지 못했다. 알고 있었더라도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품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지는 않았나 고민하곤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그냥 좋아하는 중이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지영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유 없이 잘해주고 싶고 지영의 상처를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고 있는 나를 자주 깨닫는다.
엊그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사랑이 전부라는 말을 지영에게 말했다. 이 말을 누구에게라도 말로 전한 일은 처음이다. 어렴풋이 느끼고 짐작할 뿐인 감정에 대해 감히 확신하는 말을 했다는 게 조금 놀라웠고 꺼림칙했다. 보고 싶어도 당장 만날 수 없는 연인이 할 수 있는 대화의 내용이라는 게 이런 형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으니 대화를 나눌 소재는 금세 떨어졌고 별달리 할 말도 없어진다. 그러니 사랑과 확신에 대한 말을 무의식중에 쏟아놓았을까. 슬프고 벅찬 일이다.
-Ho
2020년 6월 1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