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일흔 네 번째 주제
어릴때 아빠가 까만 봉지에 사오던 치킨.
그 안에 은박지를 까면
조그마한 닭이 갈색빛으로 익어
쌀을 조금 품은 속이 나온다
소금에 찍어먹던 그 때 치킨이
트럭에서 파는 거란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고단했을 하루 중
그 작은 치킨을 다섯이서
뜯어먹을 생각으로 사오신 걸까.
아빠의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뭐,
그 때의 치킨만큼
맛있는게 없더라고.
그냥 그리운 맛 중에
하나라서.
-Ram
어떤 생일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기로 치킨을 시킨 적이 있었다.
특히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여서 다음날 출근해야 했는데
완벽한 월요일 아침은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코앞에 모니터로 만든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치킨을 뜯은 적이 있었다.
왜 이제서야 넌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은 치킨과 함께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머릿속엔 최악의 생일이라는 단어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뻔하게도 그 해엔 최악의 날들이 많았다.
내 생일조차 그런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옆에 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하받지 못했고,
속만 상했었으니까.
아마 같은 해였던 것 같다.
오전부터 싸우고 실컷 울고 밤까지 제대로 된 밥 한 번 먹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배는 곯을 대로 곯았고,
새까만 밤이 되어서야 배달앱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과거에 시켜 먹었던 몇 개 브랜드 치킨 중에 닭다리가 컸던 치킨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그 치킨을 먹진 않았다.
싸움에도, 화해에도 매우 수동적이었던 네 모습은
전혀 관계가 개선될 의지라곤 닭다리에 붙은 살 만큼이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네 마음도 속으론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런 내 마음은 또다른 나를 달래주지 못했고,
난 서운해서 죽어버릴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배가 고파 죽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냥 내가 시킬걸.
시켜 먹을걸.
-Hee
막상 회사를 다닐때는 바빠서 어떤 치킨집이 있는지 맛은 어떤 맛들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퇴사를 하자마자 해보고 싶었던게 종류별로 치킨 시켜 먹어보기.
한번은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가 안오기도 했는데, 어떻게 기다려온 금요일 저녁인데 콜라 하나가 뭐라고 내심 서운했지 뭐야.
코끝으로 올라오는 치킨 냄새에 일단 먹고보자 했는데, 역시 콜라가 없으니 치킨무가 더 잘 팔렸다. 일단 맛보기 시작하니 확실히 음식은 누구랑 함께 먹느냐가 참 중요하다 싶었다.
막상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생각보다 더 소중하구나 싶었다.
-Cheol
1.
케이크는 3만 원, 치킨은 2만 원, 커피는 1만 원. 여태 나는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축의금을 얼마 낼지 결정하듯 선물을 골라 보냈었는데, 엊그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케이크 선물은 너무 센스 없는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그렇게 센스없는 사람이었나 싶어 혼자 조금 머쓱했다. 그러고 나니 이번 생일에 케이크가 하나도 없었다는 일이 납득이 간다. 거짓말 탐지기, 콘돔, 스타벅스 쿠폰, 치킨 일곱 마리. 결국에 나한테는 홀케이크 만큼이나 난감한 선물들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2.
1인 1닭을 외치던 나는 없어졌고, 한때 영혼의 음식이었던 치킨은 그저 몸에 해로운 음식으로 전락됐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먹던 치킨이 지금은 어떻게 다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음식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이 듦에 따라 위장의 기능이 약해진 탓인지, 먹고 나면 늘 속이 더부룩한 느낌에 고생하다 보니 이제는 한 달에 한 번도 채 먹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일이라면 입맛이 바뀌며 맛있던 음식이 맛없게 느껴지는 반면에 여태 모르고 있었거나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이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엊그제 통영에서 먹은 도다리 쑥국이 딱 그런 음식이다. 봄내음 가득한 쑥의 향. 살이 오른 도다리의 담백한 맛. 제철 음식이 제철에 맛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Ho
2021년 3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