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일흔 아홉 번째 주제
오종종한 식탁보,
어제 종일 돌렸던 청소기 흔적,
보송한 실내화 몇 켤레.
어색한 향기와 뒤섞인
새 것 냄새들.
조그맣지만 꽉 들어찬 집.
구역구역마다 손길,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게 그녀의 집 첫인상.
손이 야무진 그녀가
오밀조밀한 그릇에 담아준
찌개며 반찬거리들이
살림살이를 짐작케한다.
그녀의 공간에 들어서고
공기에 휘감기고
그렇게 종일을 떠들던
그때.
그 시간.
-Ram
1.
분명 친했던 것 같았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날이 많았고,
우리들은 그를 더 생각하고, 더 챙겼다.
그의 마음이 우리에게 조금 열린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가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우린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건넸다. 다시 봐서 반가운 마음을 온몸으로 전했다.
시간이 흘러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우리는 그때처럼 기뻐하고 놀라워하며 축하해 줬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나 봐.
아마 우리들도 마음속 어렴풋이 그의 집들이 초대를 받기는커녕
다시 볼 수 있는 날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톨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속상하진 않은 그냥 그런 사이였으니까.
2.
한 손엔 뭣도 모르고 그냥 대뜸 골라잡은 포도주와
생일 때만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케익을 처음으로 누구의 생일도 아닌 날 한 손에 들고
단순히 우리들의 시간을 빛내기 위해 초에 불을 켜고 함께 불던 그 시간이 있었다.
머리 스타일은 그때와 거의 변한 게 없지만 우리들이 있는 곳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더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여기자.
또다시 모여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비우기 위해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자.
-Hee
어떤 친구는 한가족이 마당까지 달린 3층 독채를 다 쓰고, 어떤 친구는 방 한칸에 부엌하나 딸랑 있는 집에 한가족이 모여 살기도 했었다. 학생일 때는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학업 성적이나 싸움 등 친구들과의 관계도 태어난 배경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의 능력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가정환경' 이란 걸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고 한창일 나이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었던 내 시간들도 한편으론 고달팠던 시간들이었구나 싶었다.
돌아보면 반장선거도 꼭 잘 사는 집 친구들이 했던 것도 같다. 나만 하더라도 반장선거에 나갈 것을 추천받았을 때 그걸 반대했던 건 학우들이 아닌 내 가족이었다. 내가 들었던 대답은 그냥 가정 형편 문제였다. 나를 추천했던 친구들과 선생님은 의아해하셨지만 가족이 반대하는 반장선거를 나갈 순 없었다.
그나마 나는 체격이나 싸움 그리고 공부에서도 매 순간 기회가 주어졌고 나름대로 열심히 쟁취했던 기억들이 남아있는데 누군가에겐 그 몇 안 되는 기회들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꽤나 나중이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 같다.
방치되는 아이들.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고 사회적인 격차를 부여받은 채 자라나는 아이들. 빈부격차로 얼룩진 세상. 그제서야 집에 놀러 오는 걸 한사코 싫어했던 몇몇 친구들의 속마음이 이제 와서야 이해되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지?
-Cheol
대출 빚에 시달리는 생활은 여전한데도 마음에는 여유가 꽤나 들어찬 듯 보였다. 참치 회, 한우, 관자 같은 메인만 가득하고 전채, 후식은 일절 없는 식탁이 꼭 졸부집 밥상 같아 보였지만 아무튼 좋은 일. 결혼하고 당장 같이 살아야 할 집이 필요해 마지못해 샀던 집값이 몇 년 사이 두 배나 뛰었다며,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몰라, 너한테도 언젠가 때가 올 거야... 식사내내 은근한 자랑을 들으며 치민 화는 향할 곳을 잃은 채 결국 나에게로 치달았다. 형이 산 집값이 뛰었다고 배 아픈 동생이 되기는 싫으니 공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비싸게 주고 샀다는 소파 위에 앉아 돈이 좋긴 좋다말하고 있는 지금도 내 집 거실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다. 임대인의 지지부진한 일처리 탓에 거의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물난리. 집에 있는 믹싱 볼과 그릇이 거실을 온통 채운 채 물을 받고 있다. 물 새는 집을 두고 좋은 소파에 앉아 마음에도 없는 말을 드문드문 내뱉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Ho
2021년 4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